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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이게 다 OO때문이다.

우리는 약속했다.

"텔레비전을 놓지 말자!"

거실 한쪽 벽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가운데에 널찍한 탁자를 두기로 했다.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탁자 위에서 밥을 먹고 글도 쓰고 책을 읽는 꿈을 꿨다. 합의는 쉬웠다.

모델 장윤주씨의 거실. 우리가 상상한 거실도 이처럼 한쪽 벽을 책으로 가득 채운 형태다.



그런데 '진격의 결혼준비'를 시작하며 '의외의 벽'에 부딪혔다. 바로 '부모님의 기준'이다. 엄마는 말했다. "TV도 안 해왔다는 소리 나온다니까?!" 예비 시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 나름 열심히 설명드렸고, 엄마도 그 이야기에 동의하면서도 거듭 강조했다. "나중에 어른들 집에 와서 어색하고 심심한데 TV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니." 결국 우리는 백기를 들었다.

'장롱은 필요없다'는 결론도 진작에 내렸다. 옷이 많은 편이 아니고, 번거로운 일은 딱 질색인 성격이라 이사 다닐 때마다 '짜증 가득'할 내 모습을 상상하기란 아주 손쉬웠으니까. 엄마에게 여러 번 말했고, '이불장만'으로 조율했다. '실무접촉' 며칠 뒤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빠랑 말해봤는데, 장롱은 해야겠다. 얘기들어보니까 아빠 말이 맞더라."

"엥? 필요없다니까? 엄마 그거 자리만 차지하고, 이사 갈 때 짐만 돼. 옷 같은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이불 넣을 자리만 있으면 괜찮아."

하지만 오늘, 엄마는 근처 전자제품매장, 가구 상설할인매장, 대형마트 등을 둘러봤다.

"장롱은 50% 세일이라 OO만 원이던데?"

"..."

한 번 더 '장롱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다, 이왕이면 '우리 딸 좋은 거 해줘야지, 편하게 만들어야지'하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란 걸.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게 다 능력 때문'이라는 것. 조금 더 제힘으로 설 수 있었다면, 내 의견을 더 강력하게 전달했을 텐데 자격이 없으니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그래, 어른들한테 맞추자'로 태도를 바꾸게 된다. 따질 일, 필요한 것 너무 많은 한국 결혼문화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렇다. 남북당국회담처럼 '격'을 따지는 게 아니라 '무조건 최소화'란 원칙에 충실하려 하는데도 쉽지 않다. 오늘도 난 "... 알았어요"하면서 씁쓸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채 '통화종료' 버튼을 누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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