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팔랑거리지 않고, 허우적대지 말고

영화 '웨딩싱어'를 본 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청혼은 '함께 늙자'는 말로 꼽게 됐다. ⓒ 워너브라더스



"당신과 함께 늙고 싶어요(Growing old with you)."


촌스러운 곱슬머리의 아담 샌들러가 불안정한 음정으로 노래하던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로포즈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사랑을 헛되이 말하는 일보다 더 아름답고 무거운 말이 '함께 늙고 싶다'는 이야기라고, 언젠가 나도 이 말을 건넬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벌써 10여년 전 일이다.


그 시절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으로 만들어져서, 외로움이 빠져나가면 무너져버린다'는 소설 속 구절을 경전삼아 살던 소녀는 이제 사람들 속에서 웃고, 떠들고, 술잔을 기울이는 20대 여성이 됐다. 학생회관 복도에서 담배 피는 모습이 불량스러워 보였던 한 남자와 인연도 맺었다. 가을이 오면, 그와 '함께 늙어가자'는 약속도 한다. 


자연스레 '결혼 준비, 웨딩드레스, 청첩장' 등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됐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최대한 허례허식은 줄이자고 다짐했지만 '진격의 결혼준비' 발을 떼고보니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한 장면. ⓒ JTBC



'신부님' 소리를 들으며 '스드메' 시장으로 내몰리고 싶지 않아 드레스, 사진 등은 따로 알아보는데 웬걸?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꼬르륵 가라앉기 십상이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일단 당장 급한 집부터 알아보기로 순서를 정했다. 결혼식 날짜는 11월 중순이지만, 타향살이로 주머니가 궁핍한 우리는 이사부터 할 계획이다.


바다와 같은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며 직거래 카페와 부동산 문을 두드리는데 역시나! 서울 집값은 여전히 하늘 높은 곳에 머물러 있다. 어렵게 찾은 '10점 만점에 10점'짜리 집은 경매에, 근저당까지 잡힌 골칫덩어리였다. 결국 우리는 집안 어른께 '신혼집 구하기 대장정에 함께 해달라'는 구조 신호를 보냈다.


새삼 깨닫는다. 결혼은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풍경을 만드는 일, 함께 늙어가는 일' 등등 아름다운 말로 결혼을 묘사할 수 있다. 말쑥한 옷을 입고 결혼행진곡에 맞춰 식장에 들어서는 '영화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남'이었던 사람이 '님'이 되고, 그와 내가 각각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어지는 '삶'이었다. 엄마와 먼저 집을 알아보러 다닌 날, 부동산 사람들은 "남편되실 분은"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어머님, 아버님'이란 호칭은 조금씩 입에 붙고 있고, 우리는 이제 재무계획도 그려보고 있다. 


"언니, '형부'라고 해?"


철없어 보이는 막내동생조차 얼마 전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하며 물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부디 끝까지 '예단은 어쩌고' '이건 신랑/신부가 해야' 등등의 '남의 말' 토네이도에 휩쓸리지 않기를, 정보가 넘쳐나는 '결혼시장'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기를. 

'시시콜콜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려 한 달 10일 동안  (0) 2013.07.22
이게 다 OO때문이다.  (0) 2013.06.13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  (0) 2013.05.26
제주의 오월  (0) 2013.05.16
그러니까 벌써 2329일  (0) 2013.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