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의 기자수첩> 중에서 http://blog.nocutnews.co.kr/sniper492/2372364
쌍용자동차에서는 무급휴직자 455명 복직에 노사가 합의했다. 모두 잘 됐다 한다. 쌍용자동차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고 숨져갈 때는 왜 저리 시끄러워 하며 창문을 슬그머니 닫았던 우리 사회, 우리 언론들이 잘 된 일이라며 환영한다고 말한다. 노동자만 억누르던 정부도 한시름 덜었다고 좋아한다.
쌍용차의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는 아무런 진전 없이 비참한 사람들, <레미제라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비극의 밑바탕에 깔린 쌍용차에서의 회계조작 등 부정비리 의혹은 국정조사없이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 과연 무엇으로 이 불의한 시대에 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1월 20일이면 용산참사 4주기이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참 슬프고 딱하다'. 혁명의 청년들을 응원하고 장발장을 응원한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는 어떨까?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 무덤덤한 시민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건가.
혁명이란 창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얽혀 들어가는 것이다. 장발장이 자신의 피해와 희생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얽혀 들어가듯 사람들에게 얽혀 들어가는 것, 이웃의 비참함과 고통에 놀라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얽혀 들어가는 것이 혁명이다.
열심히 선거운동하고 투표했는데 결국 실패했다고 창문을 닫아버리지 말자. 이 고단한 시대에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거기에 찾아가 쓸고 닦고 손을 잡아주고 어루만지고,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시민들이 그리로 몰려가면 야당이 갈 거고 야당이 가면 여당도 간다. 왜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 하나?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장발장을 감화시킨 비앵브뉘 미리엘 주교이다. 작품 속 미리엘 주교는 주교로 임명되고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당시 주교관은 대저택이었다. 그는 며칠 뒤 자선병원 원장을 설득한다.
"당신 병원에는 방이 대여섯 개 밖에 안 되는데 사는 사람은 26명이요. 우리는 3사람이 사는데 집은 60명이 들어가도 남아요. 이것은 잘못입니다. 바꿉시다. 여기가 당신 집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봉급을 가난한 이들과 자선병원의 환자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사용한다. 그리고 말한다. "의사의 문은 닫혀 있어선 안 된다. 성직자의 문도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문을 열자. '멘붕'에서 벗어나고 편가르기에서 한 발 물러서 모두 문을 열자.
snip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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