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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무엇이 우리를,

"도시 빈민이죠."

언젠가 호빵맨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직장이라곤 성미산 언저리에 위치한, 분필가루로 뿌옇게 채워져있던 작은 학원. 집이라곤 단 한 시간도 온 집안이 볕으로 채워지지 않는 반지하. 그런 우리가 도시 빈민과 다를 게 뭐냐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라며 나는 손을 저었다. 2010년 1월이었다.

2011년 5월, 밤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손사래를 쳤던 그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닐 이유가 없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읽어서 더 우울해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지난 1년 동안 확인한 건 감동이 아니라 절망이었고, 환희가 아니라 분노였다. 그런 사람에게 자소서는 '지난 1년 동안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 한참을 끄적대다 덮었다. 어제도, 오늘도.

경쟁에는 끝이 없고, 실패 역시 비슷하다. 모양과 색깔만 다를 뿐, 매일매일 경쟁하고 실패한다. 마냥 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싸움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날이면 개인으로선 더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부딪친다. 개인 대신 '사회'라고 할 때조차 그러하다. 이런 생각에 쌓이면 냉소적이고 비관적이게 된다. 순간순간의 즐거움말고는, 삶 자체는 달라질 것 없다며 체념한다. 아마 나는 조금 다를 수는 있을 게다. 정확히 말하면, 가능성은 조금 더 있는 편이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돈을 떠나 어느 정도 명예와 입지를 쥘 수 있는 직업을 좇고 있으니 모든 폭탄들이 한 꺼번에 터지지 않는 이상, 불가항력의 어려움은 없겠지. 이 사회에서는, 한 발자국의 여유라도 있으면 숨통이 트인다. 물론 그 한 발자국의 여유는 쉽게 사라진다. 무엇이, 우리를 조금은 덜 불행하게, 덜 체념하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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