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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뻔한 말'을 믿어요.


강신준 동아대 교수(출처 : 프레시안)

"초심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마르크스를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광맥에 닿는다. 내가 그렇다. 20년 동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면서 <자본>을 읽었다. 또 해설서를 펴내느라 꼼꼼히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2004~2005년에야 <자본>에 대한 깨달음이 오더라. '아, 이 책의 구조가 이렇구나.' 그때야 어렴풋이 감이 왔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중에 고 김진균 선생이 있다. 그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마을의 느티나무는 내가 동네를 떠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타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서 지쳐서 찾아가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죽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이 느티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려라. 한 길로 매진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아쉬울 것 없지만, 넉넉하지도 않던 삶은 나를 조숙한 애로 만들었다. 늘 판단은 빨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할 수 없는지와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판단했고, 결론했다. 너무 훤히 다 보였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짊어져야 하는 일들과 감당해야 할 일들을 너무 쉽게 구분했다. 고집과 독기만큼 포기도 빨랐다.

기자는, 의무와 포기를 누구보다 명확하고 엄밀하게 구분하던, 그래서 '하지 않겠다'가 많았던 내가 처음으로 '하겠다'고 고집 부린 일이었다. 자신도 있었다. 글을 쓰는 건 아주 오랜 습관이자 놀이였으니까. 세상에 대한 관심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겉보기에 동떨어진 전공을 가졌고, 주변에 도움을 얻을 곳도 마땅치않다는 일들은 문제가 못 됐다.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해야 겠다고 맘먹었으니까. 곧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거란 확신도 컸다.

작년 가을, 참 가고 싶었던 곳에서 거절당했다. 처음 언론사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과 저곳을 구분지으며 '가장 선호하는 언론사'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편애가 '편향'으로 굳진 않을까 싶어 애써 덤덤한 척했던 나였다. 아마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그곳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꿈'이었을테지만, 쿨한 여자처럼  굴었다. 겉보기에 단단했던 그 껍질은, 달걀만도 못 했다. 너무 쉽게 부서졌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올 1월, 또 한 번 예상 못한 쓴 맛에 몸과 마음이 저렸다. '잘했다'고 자만한 결과는 큰 망치 한 방으로 돌아왔다. 얼얼함은 계속 갔고, 그만 할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몇 년 만에 취뽀를 드나들고, 맘에도 없는 정규직 채용 게시판을 구석구석 봤다. 그랬다.

최근 '한 우물 파면 언젠가는 물이 나온다' '꿈을 안고 계속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한때 귀를 닫았다. 뻔한 말들 듣고 싶지 않았고, 활자로라도 만나면 눈을 돌려버렸다. 뻔한 말을 하는 건 쉬우니까, 그건 지금 당장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하면서. 그런데, 그 뻔한 말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뻔한 말이라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사람들이 겪고 느꼈던 일들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싸우고 삭이고 극복했던 경험들이 녹아져 있을테니까. 뻔한 말들이 버팀목이 되고, 등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흘려버릴 말들은 아닌 순간이 있다. 믿음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그 뻔한 말들에 대한 믿음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아직은 품어야 할 꿈이고, 만들고 싶은 현실이니까. 언젠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게 내 바람이고 욕망이니까.

이런 '뻔한 말'도 필요할 때가 있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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