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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이유는, 없다

열정과 무모함의 경계에서…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1923년, 거듭되는 실패에도 또 다시 에베레스트에 오를 준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지 리 멜로리는 답했다. 해발 8844미터,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두바이 버즈칼리파빌딩의 10배가 조금 넘고 우리나라 63빌딩의 33배가량인 높이다.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암석덩어리를 정복하겠다는 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저자 존 크라카우어 역시 “에베레스트에 가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들은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그곳에 오르려하는 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찾는다. 크라카우어 말마따나 ‘현명한 분별’은 ‘욕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


 네팔인들에게는 ‘하늘의 여신(사가르마타)’라 불렸고, 티베트인들은 ‘세상의 어머니(초모룽마)’라 했던 에베레스트가 최초로 측량된 것은 1852년의 일이다. 지상 최고봉임이 확인된 후 열다섯에 이르는 원정대들이 거듭 시도를 하고 그 와중에 24명이 목숨을 잃은 후에야 정상은 인간을 허락했다. 1953년 봄,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의 첫 등정 뒤에는 그렇게 많은 ‘욕구’들의 패배가 있었다. 40여년이 지난 1996년의 봄, 에베레스트에 오른 스포츠 전문지 <아웃사이드> 기자 존 크라카우어는 여전히 반복 중인 ‘욕구들의 패배’들을,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한다. 보통의 네다섯 배인 특집기사 분량은 그 패배와 죽음을 가감 없이 기록하기엔 부족했다. 그 비극을 제대로 다루려 했던 그의 강박증이 낳은 책이 바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다.



 당초 크라카우어는 ‘에베레스트 등정의 산업화’를 취재하기 위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1990년대 초반은 일정 요금을 지불하고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문제는 그런 방식의 등반대 구성이 너무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계획에 따라 몸을 만들고, 대원 간의 유대감을 키우는 기존의 등반대와 달리 ‘등반고객’으로 이뤄진 경우에는 서로를 신뢰하기 어렵다. 크라카우어는 그 ‘심한 절연감’은 서글픔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등반대원 넷을 잃은 비극에 일조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고객은 ‘무적의 가이드’를 신뢰하고 그들의 판단에 이의를 달지 말아야 했다. 철저히 고객이었던 크라카우어와 일행은 저산소증으로 판단력을 잃은 가이드 앤디 해리스,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했던 대장 로브 홀과 다른 이들을 제때 설득하지 못했다.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은 에베레스트였다. 해발 8844m의 희박한 공기는 정상적인 판단과 신체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될 수 있는 곳, 열정과 무모함의 경계가 모호해져 사람들이 너무 쉽게 올바른 판단에서 등 돌리는 곳이 에베레스트였다. 어쨌든 크라카우어는 살아남았다. 남은 자의 슬픔은 그 어떤 서사보다 웅장하고, 그 어떤 직물보다 촘촘한 말들로 다시 태어났다. 참담함과 절박함, 열정과 무모함의 기록을 하나하나 또렷이 남겼다.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담담한 문장들이 칼날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삶이란 항상 열정과 무모함, 분별와 욕구의 경계에서 줄타기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수많은 멜로리처럼, ‘그 꿈이 거기 있기에’ 오늘도 펜을 잡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