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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인문학스러운' 글, 정체가 뭐니?

이달 모임 지정도서인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中 4장 '민주주의와 인권 : 부성적 권위의 종언을 둘러싼 몇 가지 고찰' 발제를 맡았다. 첫 문단을 읽을 때부터 화가 났다. 지금도, 나는 저자가 도대체 '부성적 권위의 종언을 둘러싼 어떤 고찰'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권위적인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우리의 자각과 저항을 의도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네그리에 라캉에 영화 '밀양' 평론까지, 이런저런 어려운 '썰'로 꾸며진 글은 아무런 지적 흥미도, 자극도 주지 못했다.


며칠 전 트위터에도 썼지만, 어려운 개념과 유명인의 권위가 아니라 쉽고 정확한 단어들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때 좋은 글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많이 알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어렵고 현학적이라면 그 글은 본디 목적을 잃은 것이다. '인문학스러운' 글이 비판받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4장을 읽으며 불편했다. 과잉된 개념들의 덧칠이 그 어떤 의미도 분명하게 전달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주권’의 관계를 말하며 네그리부터 라캉, 그리고 ‘기표’ 개념을 인용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의도로 라캉을 끌어들였으며, “다중은 오늘날 전 지구적 차원에서 주권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네그리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권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권위’가 문제라는 것인가? 아니면 ‘권위’ 자체에 문제라는 것인가? 저자의 글이 정확히 어떤 지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했던 촛불을 예로 들며 “저 텅 빈 권력의 공백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어떤 의미에선, 권위 혹은 권력이라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나는 ‘권력의 공백을 견디지 못해서’ 촛불을 들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권력’이 ‘비정상적이고 비민주적인 절차로 제거됨’을 인정할 수 없어서 촛불을 들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시민을 ‘권위에 길들여진 수동적 존재’로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주권이란, 권위의 어떤 면을 보여주는가? 저자는 ‘주권’이라는 ‘권위’를 비판한 네그리를 인용하지만, 정작 주권의 어떤 점이 권위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권위는 무조건 나쁘지 않다. 소위 카리스마 또는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것은, 권위의 긍정적 모습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권위의 오남용이지 권위 자체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판받는 것은, 그가 선거라는 ‘우연성의 제도’로 얻은 권위를 마구잡이로 남발하고 있어서다. 

 저자는 또 권력‧선출된 대표 등을 ‘아버지의 형상을 쓴 주권자’에 비유한다. 대통령을 예로 말하자면, 그는 ‘주권자’도 아니다. 주권자들 가운데 좀 더 힘을 얻은 하나다. 우리는 선거로 ‘주권’을 양도하는 것이 아니다. ‘주권’이라는 우리 힘의 ‘일부’를 빌려줄 뿐이다. 따라서 “주권을 폐지하자”는 네그리의 주장을 보여주는 저자의 글은, ‘구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문제는 ‘주권’이 ‘우리 것’임을 잊고, 권위에 종속되어버리는 태도에 있지 주권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는, 민주주의와 주권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지 않은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주권은, 군주 혹은 귀족이 아닌 ‘국민의 것’이다. 잘못된 권위의 종언은, 주권의 부정이 아니라 그 권위에 사람들이 도전할 때 시작한다. 우리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그 도전의 시작을 목격했다. ‘이명박’이 상징하는 잘못된 권위, 불통의 권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 ‘작은 주인들’이 부정적 권위를 거둬들이고, 새로운 권위를 지탱하려는 선택 역시 민주주의 중 하나다.



뱀발) 다른 글들은 아직 읽지 못해서 책 전체에 대한 평가는 보류. 하지만 4장만큼은,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뱀발2) 현학적인 글을 비판한다는 핑계로 나 또한 현학적이게 쓰진 않았는가 반성 & 약간 히스테리컬한 상태에서 쓰다보니, 뭔가 날카롭게 찌르는 맛은 떨어지는 것 같아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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