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모습(mbc 아프리카의 눈물 중에서)
수 만년 동안 하얀 빛을 자랑해 온 산, 원주민들은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을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라고 불렀다. 하지만 20년 후에도 킬리만자로의 빛나는 하얀 봉우리를 보기는 힘들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지구의 체온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녹이고 있다. 북극곰이 두 발을 딛고 있는 빙하도 녹이고,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 국토의 대부분을 바닷물에 잠기게 하고 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무서운 속도와 힘을 자랑하며 기후변화 문제는 그렇게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다만 “그 해법은 원자력”이란 말까지 동의하긴 어렵다. 정부는 기후변화의 대응책으로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 36%에서 59%까지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석유 등 화석연료보다 발전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청정에너지’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원료인 우라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이 만만치 않고,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냥 ‘청정하다’고 칭찬하기 힘들다. 저렴한 전력 생산단가를 이유로 ‘화석연료보다 경제성이 좋다’는 주장 역시 원전 추진론을 탄탄하게 뒷받침 못한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비용, 발전소 건설비에 원전과 폐기물처리장 건설 추진 과정에서 매번 사회갈등이 불거지는 일을 감안하면, 마냥 값싼 에너지라고 할 수 없다. 우라늄의 채굴가능 매장량이 20~40년간 사용량 정도란 점도, ‘기후변화 시대의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원자력을 꼽기 어렵게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안전성’이다. 원전의 위험성은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100만분의 1이라는 낮은 사고발생확률이 그 방패막이었다. 하지만 0(제로)과 0.000001은 다르다.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는 ‘확률 없음’과 ‘있음’의 차이를 다시 확인해줬다. 게다가 우리의 단위면적당 원전 설비 비중은 세계 1위다. 2위인 일본과는 무려 6배 차이난다.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대응 매뉴얼도 부족하고, 지난 2월 연구용 원자로 사고 때처럼 정작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더 의심하게 만든다. 물론 당장 ‘오늘의 에너지’인 원자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전과 함께 할 미래가 ‘장밋빛’이라 포장하는 일은 그만 멈추자.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원자력 에너지는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지 못한다.
“발전소의 설계는 자연의 힘 앞에 충분하지 않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의회연설에서 원자력으로부터 ‘단계적 탈출’을 약속하며 말했다. 3년 전, 기존의 원전 폐쇄정책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했던 그다. 메르켈의 말처럼 인간은 자연 앞에서 너무도 작다. 그래서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지금과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절제하는 삶을 좇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현재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싼 값에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며 ‘확률 낮은 위험은 통제가능하다’고 속삭인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해결책으로 말하는 오류가 반복될수록, ‘지속가능한 세계’는 우리와 멀어져 간다. 오늘도 킬리만자로의 눈은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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