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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우리를 어루만져 줘야 할 때(Fix us)


 핀 조명 하나가 무대 중앙을 비추고 있다. 어둠 속, 유일하게 밝은 그 자리에서 육중한 거구에 호흡을 돕기 위한 튜브를 코에 연결한 노인이 노래를 시작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을 때…내가 당신을 어루만져 줄게요(fix you)." 영화 <록큰롤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이다. 동료를 잃고, 늙음의 슬픔과 죽음의 공포에 맞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이 한 마디에 참 많이 울었다. 하지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만으로 견디기에는 세상의 불안과 위험은 갈수록 우리를 두렵게 한다. 대한민국이란 좁은 땅덩어리에서 너무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경제활동인구의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고, 요람부터 무덤까지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201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균의 삶이다.


영화 '로큰롤 인생' 중에서


  이 ‘대한민국 평균의 삶’이 복지론 급부상의 이유다. 삶의 불안과 그로 인한 고통을 '마음 달래기'가 아닌 '시스템 차원'에서 달래주길(fix me) 바라는 많은 이들의 소망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상급식'을 대표 정책으로 내세운 야권 후보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표를 던졌다. 10여년 만에 수도권 지자체장의 '정권 교체'가 있을 정도였다. 박근혜 의원의 '맞춤형 복지'를 비롯해 여러 대권주자들이 '○○복지'를 비전으로 말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은 앞 다퉈 각자의 복지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바야흐로 '복지 정국'이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포퓰리즘은 주로 지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표를 얻기 위한 행동들을 뜻한다. 하지만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복지를 바란다. 요구한다. 대중의 몸과 마음이 먼저 복지를 말하는데, 이를 포퓰리즘으로 깎아내릴 수만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복지란 무엇인가?’ 지금 답을 고민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더 이상 ‘○○복지는 포퓰리즘인가’가 아니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는 늘어났지만 고용률은 줄었다.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인턴, 공공근로 등 단기계약직 형태가 많았으며 그만큼 고용안정성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지표다. 대통령은 금년 복지예산 비율이 사상 최대라며 "이만하면 우리도 복지국가가 아니냐"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절대빈곤율과, 60%선이 붕괴된 중산층 비율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문계고 출신 로봇 영재가 다니던 학교에서 학점 경쟁이 치열했고 일정 수준 이하의 학생에게 ‘등록금 폭탄’을 투하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학교마저 낙오자에게 제2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복지 확대를 둘러싼 공방들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출처 '세계일보'


 하지만 지금의 ‘복지 정국’은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뚜렷한 모양새가 없다. 구호만 선명하다. ‘복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며 비판하면서도 표심을 위해 ‘70% 복지시대’란 구호를 내세우는 여당, 무상급식‧의료‧보육 등 ‘무상시리즈 3탄’을 내놓는 야당 모두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늘 그래왔듯 서로 ‘내 답만 맞다’고 우기는 모양새다. 밟아야 할 ‘단계’ 대한 논의 없이 ‘모 아니면 도’라고만 한다. 중요한 것은 ‘복지’란 말 앞에 붙는 형용사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의 필요성과 실현가능성이다. 북유럽식 모델과 영미식 모델에서 ‘택일’ 아닌 ‘취합’을 해서 한국형 복지국가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원칙과 철학, 재원 등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적 합의, 차분하고 냉정한 검토 단계는 당연한 기본 조건이다. 분명한 사실은 복지 논쟁 배경에는 사람들의 바람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구호가 아닌 액션플랜, 말이 아닌 행동이다. 불안한 삶으로 내몰리는 우리는, 사회가 어루만져 주기를 바란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