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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한계를 알아야, 더 잘난 사람이 되겠지


사람은 모름지기 한계를 알아야 한다, 특히 나 같이, 다른 건 몰라도 능력 면에서는, 큰 굴곡 없이(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운이 좋았고, 딱히 능력 평가를 받아야될 상황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사람은 더더욱. 이런 사람들, 아니 나의 특징은 이렇다. 남한테 인정 받는 게 삶의 활력소요, 엔돌핀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워커홀릭스럽게 되고, 일을 만들어서 하고 맡은 일은 어지간하면 남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내가 끝내야 한다는, 그래야 완벽하다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한계를 느낄 때가 분명 있다. 내 경우 그 벽을 절감하는 상황은 대부분 "아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토론은 차라리 쉽다. 토론을 한다는 건, 그만큼 의견이 확고하고 나름의 논리를 준비해놨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격식 없이 물 흐르듯 대화를 진행할 때 '모른다'는 느낌이 오면 말끝이 흐려져버린다. 책을 읽을 때는 더 무방비 상태다. 그럴수록 한 방이 아니라 연속 잽으로 두들겨 맞는다. 지은이가 작정하고 '넌 이런 것 좀 알아야 돼'란 의도를 담았다면 주먹은 무자비하다. 아픔이 너무 강렬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은 모두 바보가 되었는가>를 쓴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끊임없이 연타를 날리는 책이다. 그가 일본 외무성 관료 출신인 사토 마사루와 함께 쓴 <知의 정원>은 주먹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이제 다치바나 혼자 때리는 게 아니다. 둘이 같이 때린다.



사토 마사루란 이름, 난생 처음 듣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똑똑하다'는 것. 실제로 그는 러시아통으로 일본 정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했던 인물이었다. 2차 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훗카이도 이북, 쿠릴 열도에 있는 4개 섬을 소련에게 빼앗겼고, 이곳을 되찾는 것을 '국민적 염원'으로 여겼다. 그러다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4개 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는데, 사토 마사루는 이 당시 외무성 실무진으로 러일간 평화협정체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물론 4개 섬 반환에는 실패했지만). 승승장구하던 그는 자신과 정치적 뜻을 함께 했던 스즈키 무네오 중의원이 부패스캔들에 휘말리자 함께 그 소용돌이에 엮이게 된다. 결국 사토는 외무성에서 쫓겨나고마는데, 이후 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료조직의 경직성, 일본 정치의 후진성 등 사회적 발언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일본 사회의 새로운 논객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력으로든, 지적 수준으로든 대단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한 책 이야기를 모은 것이 바로 <知의 정원>의 정체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지식이 아닌 교양을 쌓고 뇌를 단련시켜라"는 주문이겠다. 두 사람이 소개하는 책은 각각 200권씩 총 400권이다. 여기에 다치바나가 부록으로 소개한 책 10권이 더 있다. 사실 책을 좋아하고, 욕심도 있어서 독서일기, 내가 읽은 책 등등을 여러번 읽었지만 <知의 정원>처럼 물량 공세를 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이처럼 '어려워 보이는 책'들로 가득 찬 도서목록이 담긴 책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흥미로웠던 책 또한 처음이었다.

솔직히 두 사람은 엘리트다. 지성인 타이틀이 과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치바나도 다치바나지만 러시아와 세계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고, 고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토 마사루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가 우익이든, 천황주의자든 상관없이, 고미숙 선생님 말대로 지적인 건 섹시하다. 게다가 이 사람 수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관련 도서를 읽었을 뿐 아니라 부하직원들을 상대로 강의까지 했단다. 문·이과 구분은 일본 교육제도에서 본딴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학문 간 분리가 강할 것 같은 일본이지만 르네상스적 교양인의 면모를 갖춘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물론 내가 아는 건 이 둘 뿐이지만 -_-;). 그런 점에선 한국은..아쉽다. 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깜냥이 상당히 밑바닥 수준일 뿐더러, 노력도 지지부진하다. 

특히 뜨금했던 대목은, '러시아혁명, 진주만공격, 히로시마 원폭투하, 세키가하라전투, 베스트팔렌조약' 등의 연도를 묻는 시험을 와세다대 정경학부 학생들에게 냈더니 정답률이 고작 50%였다는 사토의 일화였다. 특히 베스트팔렌조약의 정답률은 거의 제로로 제일 낮았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베스트팔렌 조약을 근대라고 보는가, 중세와 근대의 경계라고 보는가, 아니면 종교개혁이나 르네상스에 중세와 근대의 경꼐에 있다고 보는가, 이렇게 하나의 구분이 되는 해는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면서 "지금 대학교수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라고 말한다. 또 "공부를 할수록 머리가 나빠지는 공부법이 입시공부"라고 지적한다.

역사에 호기심도 있지만, 나 역시 연도에 관해선 일자무식이다. 초중고 내내 성적이 좋았고, 심지어 학부 때 서양사, 한국사 개론 수업을 다 들었는데도 별 소용 없다. 지적 호기심보다는 암기가 우선이었던 청소년 시절의 공부법이 대학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건..슬프지만 진실이다.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지엽적인 내용을 먼저 보고, 또 그걸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해야 하는 게 요 몇년 간 압박이요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남은 게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풍경화를 그릴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구도를 잡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릴 준비를 마쳐야 세부 묘사로 넘어간다. '안다(知)'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앞으로도 그 즐거움을 계속 맛보고 싶다면 지금 나는 큰 그림을 준비해야 한다. 섣부르게 마음만 앞세우고, 어떻게 써먹을지 궁리만 할 때가 아니다.


사토 : 현대사회에서는 지식을 자기 목적에 따라 수단으로 흡수하기 때문에, 사실 지의 전체상을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교양이 필요합니다. 교양은 지의 전체상을 파악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입니다. 전체적인 지를 얻는 기법과 관련해 1811년에 나온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신학통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근대 신학의 아버지로 철학자와 교육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내셔널리즘 사상에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지요. 그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신학은 다양하게 분화하여 각각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전체를 관통한다는 건 어떠한 자라 해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선 분화된 각 분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지로서의 신학은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기법을 연구해야만 한다."

다치바나 : 현대사회에서 교양이라는 말은 점차 죽은 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만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국 일생에서 최대의 성과를 얻으려면, 생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수밖에 없지요. 그때 지식의 계통수를 머릿속에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역시 종이 매체에 쓰인 것을 읽는, 즉 독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1장에서 얘기했듯이 인류는 그렇게 해서 뇌를 발달시켰기 때문이지요.
독자분들께 대형 서점의 책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곳을 보는 게 힘들다면 문고와 신서 코너만이라도 좋습니다. 현대사회의 지의 전체상을 대강이라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도 좋지만, 역시 서점 책장에서 지의 전체상을 발견할 수 있지요. 저는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은 마음에 드는 서점에 찾아갑니다. 예견치 못한 책과의 조우가 있으니까요.


이외에도 한때 우리 언론 국제면에도 자주 올랐던 마르크스주의 소설 <게공선>신드롬이나, 이스라엘이 게임을 즐겨하는 청소년들을 무인비행기 조종사로 만들어 폭격하게 한다는 것(실제로 2006년 레바논전쟁 때 투입됐다고 한다), 스탈린 시대에 사라졌던 러시아의 커피하우스 이야기 등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풍부하고, 그래서 읽고 싶은 책들도 다양하게 담겨 있다. 다만 일본인 두 사람이 추천한만큼 많은 책들이 아직 한국에 들여오지 않은 책들이고,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토대를 둔 것들도 상당수라는 점은 아쉽다.

한문학과 교수님으로 기억하는데, 학부 신입생 때 '사고와 표현(쉽게 말해 교양국어수업)'시간에 과제로 '대학생은 지성인인가'란 주제를 내주신 적이 있다. 뭐라고 써서 냈는지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우주의 암흑마냥 새까맣지만 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난, 대학생이 일종의 특권층이라 여겼고, 지금도 그 의견에 변함이 없다. 모두가 지성인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걸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다. 실제로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아닌 사람들보다 한층 더 높은 층계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된다. 매번 자소서에 써먹는 얘기지만, 사소한 성공이어도 세상에 빚지지 않은 건 없기에, 그만큼 더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똑똑하기보다는 지혜롭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지혜는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될 것이다.

별 감흥 없이, 신간이라서 냉큼 빌렸던 책이 좋은 자극이 됐다. 역시 좋은 책은 뭐든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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