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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강용석도 그렇고,

비가 내린다. 먹구름으로 까맣게 뒤덮인 하늘은, 시(時)감각을 앗아간다. 늦잠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면, 오후 4시인지 새벽4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날씨다. 낮과 밤을 혼간하는 일이야 대수롭지않다. 문제는 시간 감각의 상실이, 시대에 맞지 않을 때다.
 
어느 국회의원이 "모든 걸 줘야 하는데 그래도 할래?"란 말만 그런 게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고 어떤 현실인지 인식하게 된다. 불쾌하거나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힘든 상황을 겪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아 그래 나는 여자구나'라고 느끼고, '우린 아직 어쩔 수 없구나'를 깨닫는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이긴다'는 마케팅용어는 너무 쉽게 남발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결국 여성의 전형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여성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을 알고 인정하는 남자는 드물다. '성별은 상관없다'는 말은 머리 깊숙히 새겨져 있지만 '상관있다'는 몸으로 실감한다. 21세기란 걸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자'라는 사실을 더 절감하고, '우린 아직 어쩔 수 없구나'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피곤하다. 늦은 밤 길을 걸을 때 마음을 졸이며 등 뒤에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경계해야 하고, 노출 욕심이 나도 조신하게 잘 가려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하네 저래야 하네'란 잡설을 참고 들어야 하고, 갑과 을의 관계에선 대부분 을인, 그래서 '소수자'란 생각이 절로 드는 상황이, 여자로 살아가기를 피곤하게 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람'으로 보더라도 남자는 여자를 '성적 매력을 주는 대상'으로 여기는 상황이 빈번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일반화하기 어렵지만(그럼 남자는 곧 짐승이란 논리에 너무 쉽게 매몰되므로), 잦은 건 사실이다. 그 원인이 뭘까에 대해 요즘 생각하고 있는데,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통제'와 '노출'에 있어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여자들은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 익숙하다. 살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법 같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가 살아남으려면, 외적·내적 아름다움과 함께 지혜와 독함을 갖춰야 하고, 성취욕이든 뭐든 욕망을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잘 감춰야 한다. 절제, 통제 혹은 억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는? 정반대라는 건 정확하지 않다. 반대 상황에 대해 사회가 관대하다는 게 맞다. 그렇게 본다.



조선일보 7월 21일 5면 ⓒ 조선일보

강용석 의원의 발언을 처음 보도한 <중앙>은 22일자 사설에서  강 의원에게 "사죄하고 사퇴하라"는 엄중한 충고(?)를 했다. <한겨레>는 '정치권의 낯뜨거운 성희롱 논란, 되풀이되는 이유는'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정치권의 여성관과 양성평등의식을 꼬집었다.강 의원 개인이 사죄하고 사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치권만의 여성관과 양성평등의식만 비판받을 일 역시 아니다. 우리(여성)가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게 만든, 그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은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세상은 프로게스테론 과잉 상태인가.

어쩌면 '세태에 맞지 않는 시간 감각의 상실'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 21세기를 사는 여자와 20세기를 사는 남자의, 감추기가 당연한 여자와 드러내기가 당연한 남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예쁘잖아"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시간 감각의 어긋남을 느낀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정직해야'하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을 수 있듯,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여성에 대한 담화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에 꽂힌다.

물론 남과 여의 차이로 환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더 보게 될 때마다 남과 여가 어긋난 시공간에서 함께 있다는 확신이 강해진다.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그(he)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건, 불편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자로 살아가는 나를 히스테릭하게 만든다. 강용석 의원 경우가 유별나지 않다는 게 나를 피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