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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삶의 시작과 끝은 곧 글쓰기

지난해 4월 저널리즘특강 과제로 썼던 기사. 폴더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봤다. 기사는 어설프지만 글쓰는 사람으로서 내용은 곱씹어야해서 블로그에 쾅 박아 둔다. 저작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내맘대로 ㅎㅎ

* 참고로 김광일 기자님은 현재 논설위원.



“행복과 연봉, 배우자의 외모. 모두가 얼마나 글쓰기를 잘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난 9일 오후 조선일보사에서 만난 김광일 <조선일보> 부국장 겸 국제부장은 “꼭 ‘남대문 상인’이 광고하듯 말하지 않느냐”며 하회탈이 되었다. 안경테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만 달랐다. ‘25년 동안 기자로 살며 터득한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곧 하회탈이 사라졌다. 김 부국장은 이제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지금 글쓰기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10년 후면 더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것은 글을 잘 쓰는 일입니다.”

글쓰기,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

옛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글보다 영상의 힘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속도가 더 강력하고 신문사마저 방송 진출을 노린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시대다. 하지만 김 부국장은 “어느 곳에 있든 제일 중요한 것은 A4 2장정도의 분량을 얼마나 잘 써내는가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왜 글쓰기인가? 김 부국장은 “인류가 전례 없는 문자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며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표정과 수신호, 몸짓 혹은 영상물이 아닌 문자메시지와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다. 그 모든 것은 문자와 텍스트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은 글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글의 힘을 키워줬다는 게 그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첫 번째 이유다.

또 글쓰기는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근본 잣대다. 김광일 부국장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A4 2장 분량의 글을 잘 써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까닭이다. 그는 “사람의 능력은 여러 가지로 판단되지만, 본질적으로는 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고 했다. “우리는 지식과 생각, 기획, 실천, 그리고 결과를 모두 글로 보고하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이 아니다. 인류의 모든 지적활동은 결국 글로 집약된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결국 책”이라며 “그래서 글쓰기는 지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알파요 오메가(라틴어로 시작과 끝을 뜻함)라고 할 수 있다”고 김 부국장은 덧붙였다.



“짧은 문장으로 인상적이고, 실감나게 써야 한다”

“이제 그 글을 잘 쓰는 방법 몇 가지를 이야기해볼까요.”

강의를 듣던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종이 위로 쓱쓱 펜이 지나가는 소리 등 각자 ‘좋은 글 쓰는 법’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소리가 강의실에 울렸다. 김 부국장이 화이트보드 위에 적은 단어 하나라도 빼먹을까 저마다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가 칠판에 처음 쓴 말은 ‘인상, 실감’이었다. “같은 장소에 있는 우리들조차 한 시간 후 여기서 있었던 일을 쓰라고 하면 제각각으로 씁니다. 원초적 진실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죠.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또 그런 글이 멀리 전파됩니다. 발전소에서 가정까지 전기를 보내려 몇 만 볼트로 전압을 높여야 합니다. 글의 전압을 높이는 방법은 인상적으로, 실감나게 쓰기입니다.”

김광일 표 글 잘 쓰는 비법, 그 두 번째는 ‘6 : 3: 1의 황금률’을 지키는 것이다. “A4용지 한 장 반짜리 글을 인상적이고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라고 했다. 사건 진술에 전체 분량의 60%를,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데 30%를, 그리고 나머지 10%를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는 게 김 부국장이 말하는 ‘황금률’이다. 그는 “시험관으로 글 채점을 할 때 이 비율이 거꾸로 된 답안지는 제일 먼저 버린다”며 “여러분이 선별하는 위치가 되도 황금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장은 짧게 써라.’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어봤을 말이다. 김 부국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문장을 20자 이내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초등학생들을 가르친 한 시인은 “아이들은, 자신이 겪은 일과 해야 될 일만 문장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들처럼 매우 명료하며 간단하고 목표를 향해 화살처럼 달려갔던 문장을 써야 한다고 김 부국장은 이야기했다. “여러분의 문장, 그리고 나의 문장은 어쩌면 타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타락한 문장을 깨끗이 씻어 복원하는 법이 바로 짧게 쓰기입니다.”

황금률과 단문으로 인상적이고 실감난 글을 써도 아직 부족하다. ‘구조’ 역시 좋은 글의 요건이다. “좋은 말을 아껴뒀다 쓰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게 김 부국장의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 쓰는 모든 글은 역삼각형 구조로 쓰라”고 잘라 말했다. “경쟁의 바다로 배를 끌고 나갈수록 적대적인 사람만 가득하다”며 “그런데 한가하게 맨 마지막에 자신의 정수(精髓)를 넣을 것이냐”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글을 완성하고 난 후에는 나지막이 읽어볼 것’을 당부했다. “모국어를 쓰는 사람에게 모국어가 주는 위대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완벽히 정리했기 때문에 그냥 있으면 자신의 글 어디부터가 자갈밭인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노력하지 않아도 어디에서 연결이 잘못 됐거나 느닷없이 과속방지턱이 나타나는지를 글이 알려줍니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자부심은 ‘팩트 파인딩’… “끝까지 남는 것은 진실 뿐”

강의 후 예비 언론인들은 먼저 ‘김광일 표 글 잘 쓰는 비법’에 맞춰 <조선일보>의 글쓰기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인상적으로, 실감나게 쓰라는 말이 조선일보 기사에서 잘 드러나는데, 지난 김길태 사건 기사처럼 가끔 선을 넘는다는 느낌이 든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부국장은 “가독성을 높이고 전파력을 키우기 위해 기사의 ‘스토리텔링’을 고민한다”며 “사실 이번 기사도 내부 논의가 됐다”고 말했다.

“일도양단으로 어느 한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는 게 우리들의 잠정적 결론입니다. 쓴 사람 입장에서 변호를 한다면, 사건이 일주일 이상 진행되면 독자들은 사건에 피로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타 신문사는 쓰는데 우리만 안 쓸 수 없죠. 나름대로 중심을 잡기 위해 어렵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학생이 “조선일보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신문사보다 팩트 파인딩(사실 확인)를 정성껏 한다”며 자신 있게 답했다. “우리의 가장 큰 자부심”이라며 “조선일보가 통일이나 노동운동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들은 그 다음의 일”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나머지들은 바람만 세게 불면 날아가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진실”이라고 말했다.

“팩트 파인딩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만, 김길태 사건 때 한명숙 전 총리 관련 보도를 찾기 어려웠던 것처럼 누락되는 사실들도 있지 않습니까?”

‘조선일보의 자부심’ 역시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사회부에 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고 국제부장이라 시각은 다르지만, 큰 원칙은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부국장은 입을 열었다. “젊은 기자들이 팩트 하나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많은 피와 땀을 쏟습니다. 그런 팩트를 버리다니요? 하지만 지면 제약이 있다면, 사회부 데스크가 절반을 추렸을 겁니다. 일부러 누락시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양심을 걸고 말하는데, 한겨레 사건데스크나 조선이나 비슷합니다.”

마무리를 하며 그는 ‘요즘 하는 잡(雜)생각 몇 가지’를 들려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글을 접하다보니 그는 “우리에겐 ‘역사(History)’보다 ‘내 이야기(My Story)’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문자질’을 끊고, 평생 무인도에서 살아야할 때 가져갈 ‘최후의 독서목록’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의도적으로 외로워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하며 내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야기가 글이고, 책도 글이다. 김 부국장 이야기의 알파와 오메가 모두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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