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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정육점'에선 고기를 팔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을 정육점이라고 했다. 선홍빛 조명이 공간을 밝히는 모습이 비슷했다. 짓궂은 남자애들은 '체육관'이라고도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연히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날 때면 부모님은 대낮이어도 창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집창촌'이라고 했다. '19세 미만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란 푯말이 놓여 있었다.

출입금지 대상이 아닌 지금도 '그곳' 근처를 지날 때면 여전히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불안감은 호기심이 됐다. 내 또래가 있을까? 어떤 옷을 입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호기심은 늘 편견에 졌다.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곳이라며, 거긴 또 하나의 '섬'일뿐이라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난 3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에게 영업장 폐쇄를 통보했다. 4월 1일부터는 일대 집장촌을 완벽히 제거한다며 업소들을 봉쇄했다. 입출구가 막힌데다 24시간 경찰 순찰이 계속 되자 손님들은 발길을 끊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는 어쩌냐"며 여성들은 시위를 벌였다. 차곡차곡 저금통에 모은 동전으로 고가의 명품가방을 계산하겠다며 백화점을 방문했다[각주:1].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마냥 얼굴에 분장을 하고, 벌거벗은 몸에 그림을 그린 채 시위했다.


영등포집창촌 폐쇄 항의 시위를 벌이는 여성들ⓒ경향신문

불편했다. 소복을 입었든, 속옷 하의만 입었든, 분장을 하거나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들의 모습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기묘하기까지 했다. "떳떳하면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며 욕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다.  그런 식의 비난은 너무 쉽다. 사실 옳고 그름을 떠나,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 방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왜 얼굴을 가리는 것이 곧 비겁함을 뜻하는가? 그들 또한 약자다. 손쉽게 돈 벌려고 '함부로 몸뚱이 굴리는 년들'이란 식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고 있다. 외과수술하듯 현상만 깔끔하게 도려내 보면, 세상은 참으로 단순하다. 착각이다. 기묘한 시위방식을 토론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그로 깨워난 '불편함'의 감각을 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더럽고 낮은 곳에 놓여있는 사람들 중 하나가 '나도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어떻게 감히'란 정서가 없이 과연 그들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걸까?

결국 중요한 건 형식보다 내용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의 것 또한 인권이다. '성매매는 폭력이다' '성매매는 노동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보다 먼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이들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성매매를 옹호한다, 엄연한 노동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노동'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여전히 입장 정리가 안 된다. 여성이고, 성(性)을 둘러싼 역학관계에 있어 우위 선점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돈 있는 남자라면 손쉽게 살 수 있는 여성의 몸'이란 인상을 주는 성매매가 사실 불편하다. 한때 성매매를 합법화해 적절하게 '관리'하자는 주장에 동의하긴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또한 '통제' 하에 성을 파는 것은 묵인한다는 일인 탓에 선뜻 지지하기 어렵다. '왜 하필 섹스를 사고 팔아야 하는가?'하는 근본적인 물음도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얘기는 접어두고 현실을 보자. 직업으로 보든, 뭘로 보든 간에 성매매 여성들에게 그건 곧 '생존권'이다. 역사적으로 자신을 팔았던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다. 노예 혹은 매춘여성.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이다. 성매매 문제 또한 여성 대 남성의 단순대립구도로만 볼 게 아니라 계급의 문제로 봐야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를 '성별화된 계급 문제'라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여성 '내부'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집창촌에 대못을 박고, 성매매를 한 남성을 처벌한다고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이 글을 쓰기가 참 쉽지 않았다. 시간 탓도 있지만, 자료를 보고 생각을 거듭할 때마다 입장이 계속 바뀌었다. 성매매를 근절할 것인가 인정할 것인가, 성매매 여성들을 지지할 것인가 비난할 것인가 등등 한 사안을 두고 날을 세운 대립각들이 순간 틈을 찾으면 금새 엉켰다. 두 가지는 분명하다. 성매매는 '성별화된 계급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한다는 것, 그리고 성매매여성의 시위방식이 어떻든 혹 그들의 삶이 어떻든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 '직업여성'이 된 것은 그들의 선택이긴 하지만, 조금 불운했던 것도 사실아닐까? 불운이 낳은 선택은 비난받아 마땅할까? 문득 '이 가운데서 죄 없는 자는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204쪽) 근절 대 허용이라는 이분법은 애초부터 어느 여성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래서 빠질 수밖에 없는 크레바스였다. 왜냐하면 이 논쟁 구도 자체가 여성의 입장에서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은 모두 이 구도에 동원되었다. 생존권 투쟁에 나선 성판매 여성이나 여성주의자나 모두 그 틈새에 양다리를 걸치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내가 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매매는 한국의 ‘주류’ 여성주의 진영의(이성애자로 서울과 인근 신도시에 사는 비장애인이며 중산층에 대학을 나온…) 여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감수성-정확히 말하면, 이는 인권 감수성, 정치의식이다.-에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서구 이론을 추종하는 일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라고 여겨졌던, 여성들 간의 차이가 바로 지금, 여기(here and now) '현실‘에서 폭발하였다.

(207쪽) 성판매 여성은 인간의 성 활동이 남성 성기 중심 섹스로 환원되고, 상업화된 성과 이성애 가족 제도 내부의 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범주다. 사회는 “‘사창가’라는 집단적 공간에서 평생 전업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성판매자라고 생각하고, 여성주의 진영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판매 여성을, ‘그들도 우리처럼’,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유목적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몇 번 혹은 몇 년을 성 산업에 종사해야 성판매자인가? 성 판매 후 대학에 진학한 여성은 ‘성판매 출신’이고, 대학 재학 중에 ‘오빠)사장님)’ 한테 돈 받으면 ‘여대생 출신’인가?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탈(脫) 성매매후 여성운동가가 되었지만,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고 생계가 막막해 간간이 성판매를 한다(솔직히 나는 그녀가 탈 성매매후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지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여성운동가인가? 성판매 여성인가?

(210-211쪽) 성판매 여성들의 선택은, 분명 성별화된 사회 구조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강제된 동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선택’은 젠더 외에는 다른 사회적 구조를 드러낸다.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 수많은 성판매 여성들이 이를 반대하며 거리투쟁에 나섰고, 많은 여성들이 단식과 자살을 감행했다. 이들의 행위를 젠더 모순으로만 본다면, 이들은 모두 포주의 ‘꼭두각시’일 것이다. 법 시행 이후, 성판매 여성들이 반발한 핵심 이유는, 성판매 여성들 사이의 ‘차이’였다. 이들에게 강제와 동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이들은 여성단체와 여성부가 모든 성매매 형태를 동일하게 본다고 비판한다.

우리 직업은 사적인 영역이다. 왜 하지 말라고만 하나. 우리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달라. 보호시설은 절대 못 간다. 평소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자유롭게 살던 여성들이 교도소 같은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 보호 기간이 끝나면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나는 잣니 없다. 원하는 여성들만 그런 시스템으로 보호하라. 다른 아가씨들은 제발 가만히 놔두라.

저희도 처음에는 이 법 찬성 많이 했어요. 진짜 피해받는 여성들 많아요. 집창촌도 형태가 많아요. 이 법이 군산 화재사건 계기로 생긴 거잖아요. 그런 데는 밀집되어 있고, 문을 잠그고 영업을 하고, 들어가면 휴대폰부터 압수해요. 한번 들어가면 웬만하면 못 나오는, 빚을 갚아줘도 못 나오는 그런 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법을 진짜 환영했다니까요. 그런 곳 단속 좀 해주라고. 그니까, 여성단체 분들한테 진짜 말하고 싶은 거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원래 그분들의 취지대로 그런 피해 여성들을 도와주라는 얘기예요. 지금은 피해자가 아닌 우리를 상대로, ‘강요를 당한다, 피해를 당한다’,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한국사회의 성매매는 서구처럼 개인 자영업 성매매 유형이 많지 않다. 한국의 성매매는 인신매매, 여성의 가족 부양, 소비 자본의 욕망, 입시 제도, 강력한 가족주의, 학연, 가족 내 성폭력, 전무하다시피한 사회복지 등으로 인한 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의 계급 차이가 성판매 여성의 ‘선택’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성매매 문제는 섹슈얼리티와 젠더 모순의 대립이 아니라, 성별화된 계급 문제의 성격이 강하다. 성매매 방지법 ‘사태’는 한국 여성주의 세력이, 여성에게 계급 문제는 ‘곧바로’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반증이기도 했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1. 경향신문은 18일 '성매매 종사자 백화점 소동 뒷얘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친구 선물 사야 하는데 신용카드는 정지되고, 일요일이라 은행도 열지 않아 동전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는 당사자 말을 전했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다. 너무도 '변명' 같아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