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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돌멩이도 순서대로 치워야

새의 부리는 너무 뾰족했다. 병 속 물을 먹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새는 병 안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둘 넣었다. 돌의 부피 때문에 물이 점점 올라왔고, 새는 마른 입을 시원하게 적실 수 있었다. 새 학기 등록금을 마련 못 해 전전긍긍하던 후배에게 학자금 대출은 ''이란 병 속 물을 먹게 도와줄 '돌멩이'였다. 하지만 갈증을 해소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돌멩이들은 빚으로 남았다. 힘들게 취업한 그에게 "이제 돈 잘 벌겠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 갚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요." 뉴스에서는 학자금 대출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대학생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때마침 나왔다.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어느 저녁이었다.

7일 청계천쪽에서 '반값등록금 공약 실현' 거리행진을 하려는 대학생과 경찰이 대치중인 모습 ⓒ 한겨레


비싸도 너무 비싸다
. ‘반값등록금’이란 다섯 글자가 여의도를 흔들고, 광화문을 촛불로 메운 이유다. 08년 우리나라 국민 1명이 버는 돈은 세계 49위였고, 대학에 내는 돈은 세계 2위였다. 게다가 등록금 지출 규모가 1인당 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가진 돈의 1/3을 학비로 쓰는 셈이다. 개개인 삶을 짓누르는 등록금의 무게는 통계 이상이다. 누군가는 등록금 때문에 졸린 눈 비벼가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팔고, 누군가는 짙은 화장에 술 한 잔과 웃음을 판다. 아이들은 학문을 배우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이상향, 대학을 꿈꾸며 자랐다. 그런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누군가는 그 숫자 앞에서 절망을, 삶을 놓는 법을 깨닫고 있다. 등록금 인하가 절실한 데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을까?


어떤 이는 “등록금이 너무 낮아지면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 지적한다
. 반대였다. 1999~2008년 동안 대학등록금은 70%가량 늘었지만, 엉뚱하게도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늘었다. 대학도서관의 학생 1인당 장서 수는 같은 기간 30% 많아졌지만, 등록금 인상률에 못 미친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는 등록금 물가 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늘어난 그 많은 등록금은 누가 다 썼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학교 운영에 쓰고 남은 돈들은 차곡차곡 재단 금고에 쌓였다. 전국 대학이 지금까지 쌓아 온 적립금은 10조원, 상위 10개 대학이 1년 새 모은 돈만 3200억원이 넘는다. 땅 사고 건물 짓는데 80% 학생 장학금 주는데 8% 쓰인 돈이다. 등록금을 낮추면서 인상률을 억제할 여력이 충분한 상황이다.

등록금 관련 6월 8일자 경향신문 만평 ⓒ 경향신문


분명한 이유와 충분한 재원이 있는데도 멈출 줄 모르는 ‘등록금 인상열차’
, 그 폭주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원해서 가는 대학이니 아무리 등록금이 높아도 그건 각자 몫’이라며 슬그머니 물러설 때가 아니다. 2011년 한국사회에서는 최종학력과 대학 이름이 당장 벌 수 있는 돈과 앞으로 꿈꿀 미래를 결정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스운전을 해도 행복하고 돈도 잘 번다는 선진국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 대학졸업장이 ‘사회적 의무’라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크기여야 한다. ‘의무’라며 높은 등록금을 당연시하고, 졸업장 값으로 개인의 삶과 희망을 앗아가는 곳은 ‘불공정 사회’에 가깝다. 교육이 권리가 아니라 생활수준별 맞춤형 상품이 된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각 정당의 대학등록금 인하정책 ⓒ 한겨레


등록금 문제는
, 공정사회를 위해서도 미룰 일이 아니다. 등록금 인하의 필요성, 정당성은 오랫동안 반복된 이야기고, 대통령이 약속한 지 벌써 5년이 다 됐다. 특정 지역과 계층에 혜택을 주는 대강 총사업비 22조원은 마련하고, 법인세
소득세율 인하로 연 4~5조원 세수가 주는 것은 감내하면서 반값등록금 예산 7조원은 어떻게 조달하냐는 말도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의지와 철학의 문제다. 반값등록금 공약 실현은 '교육은 모두의 것'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첫 걸음이다. 지나치게 사립대학에 의존하고 있는 고등교육체제와 수입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대학 재정구조, 턱 없이 부족한 고등교육 재정 등 '대학교육'이란 병 안에 든 돌멩이는 수두룩하다. 우선 그 병 주둥이를 막고 있는, '등록금'이란 돌부터 치우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