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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한국에 괴물이 산다.

2009년 한국에 괴물이 산다

한강, 아니 한국에 괴물이 산다. 엉뚱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그 괴물은 매우 덩치가 크다. 우리가 괴물을 보지 못하고, 믿지 않는 이유다. 또 이 괴물은 5천만명 가까이 되는 한국인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 덩치가 크고 힘이 셀 뿐 아니라 카멜레온처럼 겉모습도 다양하게 바뀌기 때문에 괴물의 실체는 물론 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채 사람들은 살고 있다.

2009년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괴물의 첫 번째 모습은 ‘취업’이다. 청년실업이 100만에 육박하는 요즘, 20대는 토익 점수를 높이고 인턴과 해외연수 등의 경험을 쌓는 등 스펙 쌓기에 급급하다. ‘스펙 괴물’이 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세상이다.

사람은 물론 땅도 괴롭다. 전국 곳곳에서 삽질이 계속 되는 탓이다. 삽질의 대표격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바로 괴물의 두 번째 모습이다. 이 사업은 22조원의 예산을 들여 2012년까지 끝마치는 게 목표지만 4대강에 보를 쌓고 수질을 개선하는 것 외에 레저시설과 자전거 도로를 마련하는 등 연계 사업까지 마치는 데 드는 사업비용과 기간은 예측이 어렵다. 이 과정에서 강바닥을 파헤치고, 물의 흐름을 가두는 일이 엄청난 환경 파괴를 가져올 것이란 불길한 경고가 들려오지만 괴물은 멈출 줄 모른다.

괴물은 변화에 맞춰 ‘변이’도 한다. 대표적 분야가 유통업계다. 대형마트 수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소량 구매를 선호하게 되자 유통업계는 발 빠르게 기업형 슈퍼(SSM)으로 변이했다. SSM은 지난해 말부터 올 6월까지 100곳 가까이 늘어났고 2008년 슈퍼마켓 전체 매출의 약 17%를 차지했다. 전국적인 유통망 확보에 대기업의 지원까지 더해진 SSM이 골목상권에 진출하면서 재래시장은 빠른 속도로 쇠락하고 있다.

크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괴물의 변이는 축산업에도 영향을 줬다. 단기간에 많은 고기와 우유, 달걀 등을 얻기 위해 소, 돼지, 닭을 기르는 일도 공장화된 것이다. 하지만 대형화된 축산업은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광우병, 조류 독감, 그리고 2009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플루까지.

괴물은 시대에 맞춰 진화했으나 '한국전쟁'이란 오랜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사람들에게 '학력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재산'임을 일깨워 주었다. 또 '북한은 우리의 적이고 사회주의는 잘못된 이념'이며 '미국은 우리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5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한국전쟁이란 괴물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레드콤플렉스, 교육열 등의 고질병을 앓고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괴물의 모습은 그 외에도 이동통신 시장, 아이돌, 사회양극화 등 다양하다. <세명저널>은 2009년 특집호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괴물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지 등을 진단해본다.

/박소희 기자

2009년 '신문편집과 CG실습' 수업 들을 때 썼던 글. 옛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그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놀라기도 한다.

다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건,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자유롭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