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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장마만큼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것?

고무장화를 마지막으로 신은 게 언제였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이다. 친구들도 비슷한 줄 알았다. 하지만 비 오는 토요일에 만난 친구는 알록달록한 색깔에, 그림까지 그려진 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그녀만 신는 게 아니었다. 초록색, 보라색, 빨간색 장화를 신은 사람들은 지하철에도, 명동에도 많았다. 어린 시절 신고 다닌 노란색 고무 장화, 농사 짓던 할아버지의 남색 장화만이 그 세계의 전부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장마 때문이다. 예년보다 일찍 시작한데다 기간도 길어져 발이 젖지 않고 개성을 뽐낼 수 있는 '패션장화'가 인기상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구멍이라도 뚫린 듯 계속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가만 보면 장마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닮아 있다. 우중충한 하늘빛, 멈출 줄 모른느 비는 사람을 쉬이 우울하게 만든다. 끝없는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단순 암기형 지식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하는 우리나라 교육 역시 비슷하다. 한중일 세 나라 중에 우리나라 고교생의 학습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가장 많다. 초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조사한 PISA 결과를 보면 한국은 꾸준히 1,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생이 있었다. 높은 교육열로 유명한 서울 강남에서는 몇 년 새 아동심리상담소가 인기라고 한다. 경쟁과 학업부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은 덕분이다. 우울한 풍경이다.

잠깐 개었다가도 이내 장댓비가 쏟아지는 날씨의 변덕스러움도 비슷하다. 정권마다 다르고, 해마다 변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제도, 그 중에서도 대입제도의 특징이다. '하나만 잘 하면 대학 갈 수 있다' 10년 전 이야기다. '대학은 수능 말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5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논술은 사라졌고 다양한 활동과 독서가 중요하단다. 국가공인 영어시험도 만들어 토익이나 토플 대신 입시에 반영토록 추진할 예정이란다. 한결같이 변화무쌍한 입시제도에 학생, 학부모, 교사 할 것 없이 늘 당황한다. 갑작스런 폭우에 집이 무너지고 비닐하우스가 잠기는 것만큼, 급변하는 교육제도에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공교육이 신뢰를 잃는 일 또한 피해가 만만찮다.

ⓒ연합뉴스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교육제도가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이란 장화를 신게 한 것은 아닐까? 여름 장마는 그래도 끝이 있다. 장마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장화를 벗고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제도'란 장마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흘러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장화를 벗는 날이 언제 올 지 통 감잡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긴 장마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