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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두 번의 밤과 한 번의 낮 동안


# 청와대에 갔다. 53명의 중증장애인과 그들을 돕는 같은 수의 보조원들과 함께.
도토리학교 때도, 연신"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작은 종이를 내밀거나 지팡이로 앞을 확인하는 지하철의 그들을 볼 때도, 오늘 같은 날에도 마음이 늘 복잡하다.

사지 멀쩡하고, 감정과 뜻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욕망과 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나를 안심해야 하는가.
무감각한 미소로, 고장난 카세트마냥 입에 붙은 멘트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안내원들의 배려없음을 비난해야 하는가. 낯선 자의 손길을 거부하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안타까워해야 하는가.

# 시가, 문학이 좀더 깊이 남았으면 좋겠다.

# 청와대 좋더라. 어쨌든 지리적 위치나 조경이나 훌륭하다. 집이라기보다는 수풀 속에 감춰진 별채 같았다. 멀리 보이는, 다닥다닥 성냥갑처럼 붙어있는 삼청동 일대 한옥들도 아름다웠다. 사방이 탁 트여 있었다. 국회와 사뭇 다른 느낌. 바로 뒷편에 한강이 자리잡고 있지만 의사당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딱딱한 빌딩숲. 그냥 거기엔 온전히 도시만 있다.

# 그래서 정말 한옥에서 살고 싶다. 아니, 거기까진 힘들더라도 낡고 오래된 다세대주택들이 많은 동네였으면 좋겠다. 난방비도 많이 들고 이곳저곳 먼지 끼고, 녹투성이일테지만 그런 곳은 사람냄새가 난다. 신사동에 살 때 그랬다. 모처럼 일찍 귀가하는 날, 땅거미가 깔린 어스름한 저녁이면 꼭 어디선가 된장찌개 냄새가 풍겼다. 낡은 츄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를 오가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길만 건너면 현대백화점, 현대아파트가 있었고 집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그 놈의 '잇 플레이스'라는 가로수길이 있었지만 정말 내가 사랑했던 건 그 동네의 낡음이었다. 현대아파트와 백화점, 가로수길은 내 구역이 아니었다. 거긴 어쩌다 한 번씩 들여다보는 구경거리였다.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물욕에 대해서만큼은, 인지하는 것과 별개로 무디다. 욕망이 있어도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는 욕망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나는 그 욕망을 스스로 제거해버렸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해온다. 웃으면서 말해도 목소리가 흔들린다. 어쩌면 이미 울어버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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