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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소수의견>을 보고나서...




<소수의견>을 보고나서...


1. 총평 : 제법 잘 만든 상업영화다. 러닝타임이 126분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냥 지루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하지만 근래 본 법정드라마류 가운데는 손에 꼽고 싶다. 국민참여재판 담당 검사의 과한 리액션말고는 법정 공방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좋았다. 다만 워낙 사건 자체가 형사소송법의 여러 절차와 복잡하게 얽혀있다보니 "법률용어 더럽게 어렵다"는 공수경 기자(김옥빈)의 대사를 관객들이 공감할 것 같다. 나도 그 장면에선 빵 터졌지만.


2. 아쉬운 점 : 두 개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보니 다소 힘이 분산된 느낌은 아쉬웠다. 아무래도 박재호(이경영)가 '부작위 입법'으로 국가배상금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에 효과적인 수단이었지만, 결국 스토리의 중심은 그의 형사재판이었기 때문에 민사소송은 흐지부지되어버린 듯한. 법정장면이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는 쪽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예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증인 등장이나 또 다른 증인이 박살나는 일(;), 나쁜노무 검사의 태도 등등은 필요한 양념이겠다 싶으면서도 역시 영화는 영화다 싶었다. 또 스토리가 '국가'라는 선명한 상대방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검사는 나쁜 XX들이야', '판검사끼리 저렇게 해먹을 줄 알았다니까'하는 편견들도 더 굳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3. 그래서 현직 법조인들이 보면 좋겠다고 느꼈다. 얼마 전에 모 판사분이 '기자들이랑 영화를 봐도 좋겠다'고 제안해서  '마침 <소수의견>이라고 법정드라마도 개봉했던데요 ㅎㅎ'했더니 '그건 좀...'하면서 살짝 당황해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일반 대중이 법을, 법을 다루는 사람들을 '여전히'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현장에 계신 분들도 간접적으로나마 되새김질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허구는 없다. 


4. 몇 가지 걸리는 점들 : ... 그래도 명색이 법조팀 소속이라고 영화 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있더라 -_-


- 영화 설정대로라면 윤진원 변호사(윤계상)는 서부지법 국선전담인데 사무실 주소는 광진구에 있는 장대석 변호사(유해진) 것이다.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써서 그렇다지만... 내가 아는 국선전담들은 대개 소속법원 근처에서 일하던데 -_-

- (스포일러일 수도;) 윤진원 변호사가 징계위기에 놓이는데... 검찰이 대한변협에 하는 것은 징계'개시'신청이지 징계'심의'신청이 아니다. 그리고 변호사법에 따르면 대한변협 징계위원회에는 법무부 장관이 추천한 검사 2명이 위원으로 들어가긴 하는데, 아무리 영화여도 징계위원 = 징계개시신청자라는 설정은 좀....

- 압수물을 해당사안이랑 관련 없는 검사 손에 넘긴다? 저건 불법 아닌가... 이해가 가질 않았음.

- 재정신청(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직권으로 기소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받아들여진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무죄 구형을? 1. 뉴스감이다. 2. 징계감인가(?) 이것도 뭔가 '검은 결탁' 같은 걸 보여주는 장면인데 너무 휘리릭 지나감

- 법정 내 증인석 위치는 저게 아니야... 재판부끼리 논의할 때 배석판사들이 저렇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구속 중인 피고인이 기자회견이라니... 우리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고...

- 포스터 문구가 이상해... '피고 대한민국의 유죄를 주장합니다'는 성립할 수 없다. '피고'는 민사소송 용어고, '유죄'는 형사소송에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 피고 대한민국의 '패소'라든가 '피고인' 대한민국의 유죄를.. 이렇게 써야 하는데...


5. 아 그리고 공 기자가 "미안해하기 시작하면 기자 못한다"고 했는데. 아니, 미안해 할 건 미안해 해야지!! 이건 개인 생각이다...;


6. 추가) 서울지방경찰청장 아저씨 보는데 자꾸 김용판 생각이...


아무튼 영화는 재밌었어요(마무리는 훈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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