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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반쪽짜리 동의


읽는 내내 회사, 그리고 나와 언론 생각을 많이 했다. 직장생활 만 3년을 채우고 나니, 불만이 커져간다. 그만큼 <오마이뉴스>가 어떤 기업인지, 기자는 어떤 직업이고 한국의 언론판은 어떤 곳인지 알게 됐기 때문일까? 피터 틸의 이야기에 비춰 몇 가지 얘기해보겠다.


가장 먼저 무릎을 쳤던 부분은 ‘독점이윤’ 대목이었다. 1에서 n이 아닌, 0에서 1이어야만 하는 독점이윤, 우리에게 그것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구호였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가장 주목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창간 1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는 독점이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주,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다. 기업의 위기는 안팎의 요소가 작용한다지만, 내부만 들여다봤을 때 회사가 반성해야 할 지점은 여기다. 우리는 “독점을 구축”하지 못했고 “경쟁을 벗어나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실질’이 아닌 브랜드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라며 저자가 든 ‘야후’ 사례도 흥미로웠다. 2012년 중반, 야후의 CEO가 된 머리사 메이어는 야후를 ‘쿨’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야후가 실제로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이냐 하는‘ 의문점을 풀지 못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쿨‘한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바꿨다. 비슷한 사례를 언론에서 찾아보면 (우리 빼고) <뉴스타파>와 <국민TV>가 아닐까. 실질을 추구한 <뉴스타파>는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쿨한 9시 뉴스'를 표방했던 <국민TV>는 지금 위기다. 두 곳을 보며 그럴듯한 차림새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알맹이라는 클리셰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다.


피터 틸


기자라는 직업 자체도 다르지 않다. 이 바닥에선 단독 경쟁이 치열하다. '제로 투 원'일 때, 단독보도는 더 빛이 난다. 하지만 급변하고 열악해지는 언론환경은 기자들이 0에서 1 보다는 1에서 n을 좇게 만든다. 이 "경쟁적 생태계"는 언론인들을 병들게 한다. 저널리즘이 필요한 사람과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언론사들이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한다. "완전경쟁 시장에 있는 기업은 현재의 이윤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장기적 미래에 관한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다"는 피터 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다. 꼭 등가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뉴욕타임즈>나 <가디언>이 각각 디지털 저널리즘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던 것은 그들이 완전한 독점기업은 아니었지만, 완전경쟁과 독점의 어딘가에 발을 걸치고 있은 덕분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진실은 아직 찾아내지 못한 숨겨진 비밀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읽을 때부터 나는 막막해졌다. 피터 틸은 그 예로 에어비엔비와 리프트, 우버를 들었다. 당연히 비싼 값을 치르고 호텔방을 잡던 여행자들에게, 어느 장소에 가고 싶다면 택시를 잡거나 리무진을 빌려타던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 비밀을 이 세 회사는 찾아냈다는 뜻이었다.


막막했던 이유는, 역시나 저 사례를 나와 회사, 언론의 현실에 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을 좇는다고, 숨겨진 비밀을 찾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허구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진실은 가득할 뿐이다. 어쨌든 언론사도 이익을 창출해내야 하는 기업이지만, 피터 틸이 말한 원칙들을 대입해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어버리는 쪽이다.


"페이팔이 거래 관계가 아닌 단단히 엮인 관계가 되길 바랐다"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튼튼해지면, 우리의 커리어에서도 더욱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말 역시 비슷한 인상을 줬다. 철저히 스타트업 규모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더는 "엮인 관계"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 재능 있는 직원들은 그런 방식으로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회사의 미션과 팀에 관한 훌륭한 답변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티브 잡스 같은 창업자가 기업에는 필요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여서 가능했다.


결론적으로 너무 뻔한 말이지만, 현실과 이상 속에서 나는 피터 틸에서 반쪽짜리 동의밖에 할 수 없었다. 역시 창업은 내 적성이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