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다시, 민주주의


어쨌든 2014년 마지막 달의 최대 이슈는 ‘땅콩회항’이었다. 사람들은 회항이라는 사상 초유의 갑질에 분노했다. 재벌 3·4세들이 검증 받지 않은 채 무혈입성하는 한국 재벌 특유의 문화 탓에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는 반응도 많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동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단지 ‘오냐오냐 소리만 듣고,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부잣집 딸’이라서? 이 설명은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2% 부족하다. 조현아는 괴물이 아니다. 한진그룹이, 오너일가가 만든 안하무인이 아니다. 그를 만든 것은 사회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약자들을 외면하며 정치적 권리를 소비의 권리와 맞바꿔버리는, 결국 ‘네 고통은 네 팔자’라고 말하는 우리가 또 다른 조현아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는 <세상 물정의 사회학>에서 그런 세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텔레비전이라는 현대의 예절학교에선 다양한 경력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주름살과 뱃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으니 수치심을 느끼라는 상업광고 선생님부터, 외국인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라는 공익광고 선생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매너를 가르치는 언론인 선생님, 틈만 나면 정체불명의 선진국 타령을 하며 학생들을 타박하는 정치인 선생님까지, 다양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살뜰히 보살핀다.


텔레비전 예절학교에 의해 수치심이 끝없이 속류화되면, 수치심의 영역은 점점 사소한 대상으로 축소된다. 우리가 '입 냄새'와 '떡진 머리'와 같은 사소한 수치심에만 예민해져 있을 때, '공금횡령', '불법상속', '논문 표절', '위장 전입'과 같은 짓을 한, 후안무치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사람들이 속류화된 수치를 가르치고 있다. 속류화된 수치에만 민감해진 문명화된 사회의 지독한 역설이다(본문 143쪽).”


수치심이 속류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 책을 덮고 “이건희의 성공은 자기계발서 덕택인지, 아니면 이건희의 아버지가 이병철이었기 때문인지(128쪽)” 묻지 않는다. 수치심이 사소해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신만의 예외를 꿈꾸며”복권을 산다. “연대라는 단어를 살해한 사회(192-193쪽)”의 단면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존엄의 회복을 위해 인정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땅콩회항’의 사무장은 예외였다. 본인의 고통어린 결단이 있기도 했지만, 그가 운이 좋은 편이었음은 분명하다. 


▲ 구치소로 이감되는 조현아 ⓒ 유성호



이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 ‘1대 99의 사회’라는 표현들이 닳고 닳은 말이 되어가는 중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거침없고, 작은 성취를 좇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주눅 들어 있다. “오직 부만이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이기적 상식(220쪽)”은 한국 사회에 뿌리 잡은 지 오래다. 누구나 똑같은 한 표를 가지고 있다지만, 우리는 이미 절망하고 있다. 이건희의 1표와 나의 1표는 진짜 똑같냐는 의심을 좀처럼 접어두지 못하며. 


그래서 다시 ‘민주주의’란 단어를 곱씹어본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이 ‘세속’을 묘사하기 위해 택한 26개의 키워드는 민주주의라는 결론으로 모아졌다. 


모든 개인이 소중한 관심을 받는 품위 있는 사회, 공감에 제도의 옷을 입힌 복지사회, 연대가 지배하는 사회, 부동산 가격을 사수하는 패당이 아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회, 위험의 인식을 방해하는 관료들과 군중을 기획하는 ‘패밀리’를 교정하는 사회. 이 사회를 만드는 힘은 민주주의에 있다. “신분사회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한 선택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135쪽).” 우리는 그런 사회를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