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요즘 화제다. 아직 보진 못했는데 관련 글 두 편에서 비슷한 얘기가 눈에 들어왔다.


- 상상컨대, 10년 뒤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다면 무얼 할 것인가? 혹은 20년 뒤? 지금처럼 신문 1~40면을 만들고 특집을 제작하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 수익 기반은 매우 초라할 것이고, 위상은 지금보다 더 떨어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10년 뒤, 나는 45세일 텐데, 명예퇴직을 강요당한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우연히 접한 어느 기자 선배의 페북).


- 그 리포트를 쓴 아담 B. 엘릭(Adam B. Ellick)은 내 제자 중에 한 명이다. 나는 그에게 뭔가 흥미로운 일을 하려면 뉴욕타임스를 떠나라고 조언했다. 뉴욕타임스의 장점은 딱 하나, 브랜드다. 브랜드 빼고는 모두 다 단점이다. 당신이 뉴욕타임스 시니어 기자라면 위로 상사가 10명은 될 것이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안돼'라고 말할 사람이 10명이나 된다. 이런 굉장히 큰 조직 안에서 혁신을 하는 건 힘들다(니코 멜레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


'10년 혹은 몇 년 뒤 나는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시간은 언제나 힘이 세다. 늘 상상 못한 속도로 지나가버린다. 어느덧 나도 3년차다. 여전히 설익고 풋내나는 기사를 쓰고,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다가...' 싶을 때가 많아진다. 언젠가 '이렇게 돼버렸네'라며 한숨을 푹 내쉬고 싶지 않으니까.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덧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왕이면 나는 한 자리를 지키며 살고 싶다. 세상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말과 힘에 흔들리지 않으며 한 자리를 지켜가는 일은 멋진 일이다. 10년, 혹은 20년 뒤, 나는 그렇게 자리를 지킨 사람으로 남길 꿈꾼다. '이렇게 돼버렸네'는 탄식보다는 만족이 묻어나는 한 마디이길 바란다. 그런데 빠르고 새로운 것을 좇는 세상은 점점 그런 사람들을 뒤쳐졌거나 낡고 먼지투성인 존재처럼 취급한다. 느리고, 손때 묻고,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인 일들은 고개를 돌려야할 대상이 되고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의 일도 비슷했다. "난 16년이나 이 일을 했다고요!"라고 아무리 소리질러봤자 그는 재고정리 대상이다. 점과 점,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세상에서 필름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적절한 시간과 공을 들여 찰나의 순간을 최대한 재현해보려는 사진 현상작업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되새김질보다는 꿀꺽 삼켜서 소화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으니.


숀 오코넬의 25번째 필름 찾기는 그의 쓸모를 회사에 증명해보일 마지막 기회였다. '특별한 경험'에 써넣을 티끌만한 경험조차 없었던 월터 자신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그는 탐험가였고, 슈퍼히어로였고, 벤자민 버튼처럼 특별한 삶을 사는 존재였다. 상상 속에서는. 현실의 월터는 몽상가였고 퇴물취급받는 말단직원에 밥벌이 고민으로 어깨가 무거운 소시민일 뿐이었다.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상상과 현실을 이어주는 끈이 있다면? 여전히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월터의 대모험'은 그에게는 그 끈이었다. 헬리콥터에 뛰어올라타고, 바다 속 상어와 싸우고, 화산 폭발을 겪는 등 온갖 무모한 시도 끝에 숀 오코넬을 만난 월터는 깨닫는다. 무미건조한 일상과 무기력한 자신에게서 벗어나려했으나 그것들은 결코 도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음을.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일의 아름다움을. 25번째 필름, 그리고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가 삶의 정수며 아름다웠던 이유다. 전혀 어울리지 않고, 영화 내용을 하나도 전달 못해주는 한글 제목 때문에 기대보다 실망스러웠지만, 그 마지막 장면만큼은 마음에 남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혁신'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왜 '쌓아가는 일의 의미'를 떠올렸을까. 미래를 말하기는 쉽지만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치밀하게 분석하고, 조금씩 고쳐나가며 순간들을 쌓아가는 일은 또 다른 새로움일 수도 있다는, 뻔한 생각이 들었다. 늘 깨달음은 뻔한 답으로 나온다. 그 상투성조차 결국 머릿속에만 머무르고 현실이 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뻔한 답만 도출해내는 조악한 상상력이 아니라 '실천'의 부재에 있다. 언젠가 쓴 <그을린 사랑>리뷰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 게으름이 경험의 축적을 낡고 뒤쳐진 것에 머물게 한다. 아름다움에 머무르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갇혀버리지 않으면, 머물러버리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