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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섬마을 그집에는 제비가 오려나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 10점

함민복 지음/이레


칼럼이었나 동정 기사였나. 기억은 불분명하다. 그가 결혼한다는 기억에 ‘앗’ 속으로 외마디 외쳤던 어스름한 장면만 떠오른다. 오랜만에 <눈물은 왜 짠가>를 읽다 그때가 생각났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 석 자를 넣어보니 결혼소식도 벌써 3년 전 일이다. 시인은 여전히 강화도에서 물때 달력을 보고 있단다. 


희미한 기억이나마 그의 소식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는지 ‘제비야 네가 옳다’를 읽으며 피식 웃었다. “강화도 우리 동네에는 이십여 호의 집이 있다. 그중 제비가 집을 짓지 않은 집은 빈집 두 집과 남자 노인이 혼자 사는 집, 그리고 역시 남자 혼자 사는 우리 집뿐이다.” 


시인은 제비가 집을 지은 곳들이 제법 부러웠나보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묻어나는 외로움을 안다면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눈물은 왜 짠가>를 관통하는 한 글자는 외로움이니까. 옛 사랑의 그림자, 기다림이 배어있던 어머니의 밥상을 주억거리며 시인은 참 외로워했다. 제비를 속이려고 TV를 크게 틀어 여자와 아이들 목소리도 내고, 여자 호르몬 냄새를 맡나 싶어 아는 후배에게 집에 한 번 놀러오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 책을 처음 펼쳤던 그 무렵의 나도 비슷했다. 책장 한쪽을 접어둔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곳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방 안에는 참 많은 내 친구들이 있습니다. 온몸이 입이라 소리만 들려주는 라디오가 있고 술 담배는 끊을 수 있어도 결코 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전화기가 있습니다. 또 내 감각기관 중 눈하고만 친구가 되는 벙어리 신문도 있고 말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티브이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호출기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나는 외롭습니다. 방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 혼자뿐입니다. 모두 안 움직이는데 혼자 움직이고 있다는 외로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는지요.” 

 - 새소리에 그림자와 외출한 어느 날. 


신사동 어느 옥탑방에서 세 끼 밥 먹듯 외로움에 허덕일 때, 혼자 티브이를 보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때가 아니면 집에선 다른 감정에 젖어볼 일이 없겠구나. 사람에겐 망각도 밥 먹는 일 같다. 그날들은 조금씩 아득해져간다. 


워낙 표제작이 유명하고, 가슴 절절한 글인지라 나 역시 ‘눈물은 왜 짠가’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로 외웠던 것 같다. 다시 만난 함민복의 외로움들은 낯설다. 그 낯선 외로움들이 오히려 마음에 남는다. 돼지 자궁에 손을 넣은 채 걸려온 옛 사람의 전화, 자본주의 사회 속 산소발생기 은행 안에서 저 혼자 숨가빠하는 모습들, 소젖 짜는 기계 만드는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천천히 먹던 마지막 밥 한 그릇, 그리고 찬밥과 어머니. 


시인은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라고 노래했다. 선천성 그리움은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의 심장을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느낄 수 있다면 조금 나으리라. 섬마을 시인의 집에는 이제 제비가 찾아올지 궁금해졌다.

http://sost.tistory.com2014-01-19T09:56:23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