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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걷고 싶다

북극곰은 걷고 싶다 - 10점
남종영 지음/한겨레출판

'온난화 방치하면 세기말 평양이 제주도된다'

4월 1일 <한겨레>는 기상청의 '기후변화 전망보고서'를 인용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지 않은 채 온난화가 지속되면, 21세기 후반 평양의 연평균 기온이 현재의 서귀포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보도했다.

하루 전, 기상청은 올해 말 나오는 '국가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제5차 보고서에서 채택하고 있는 기후변화 평가 기준을 적용, 한반도의 기후변화 전망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만약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배출하면 21세기말 한반도의 연평균 온도는 현재(2001~2010년 평균) 11.0도보다 5.7도 높아진, 16.7도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름(최고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 2개월가량 더 길어지고, 폭염과 열대야도 크게 늘어난다. 온실가스 감축에 애쓰지 않으면, 한반도는 지난 100년간 전세계 평균 기온이 0.75도 오른 것보다 7.6배 빠른 속도로 더워진다.

‘지구온난화의 책임이 과연 인간에게 있는가’는 꽤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다. 극지방의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졌고, 바다가 빨리 녹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냐는 점이다. 지난 주말, 그 의문과 두려움을 안은 채 <한겨레> 남종영 기자가 쓴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펼쳤다. 

"인간은 시공간의 한 점 위에 존재한다. 시간이 엑스축, 공간이 와이축이라면, 인간은 엑스축과 와이축이 교차해 펼쳐지는 시공간에 자취를 남긴다. 인간은 시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중략)… 그런데 시간의 엑스축과 공간의 와이축이 뒤틀리고 접힌다. 지구의 온도는 지난 100년 동안 0.74도 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4천만 년 전 에오세 이후 지구의 온도는 지금까지 단 2~3도 올랐을 뿐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은 그 뒤틀린 엑스축과 와이축의 기록이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은 온전히 자연’이라 믿으며 살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캐나다 허드슨 만과 미국 알래스카 아크틱빌리지·배로·카크토비크, 남태평양 투발루와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극 킹조지섬, 그리고 한국의 강원 고성의 이야기다. ‘뜨거워서 아픈 지구’의 ‘가장 아픈 지역’들이 지르는 비명이기도 하다. 

2006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자연자원부 마틴 오바드 박사팀이 2000~2005년 사이에 허드슨만 남부에서 지내는 북극곰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부분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콜레노스키 팀이 1984~1886년 측정한 데이터와 비교하면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바다얼음 또한 빈약해졌다. 처칠 만의 북극곰은 바다가 언 뒤에야 바다얼음 위를 걸어 사냥을 떠난다. 중간에 바다얼음이 녹은 지점이 나타나면 헤엄쳐 나간다. 네 발 달린 동물 가운데 북극곰은 가장 훌륭한 수영선수이지만, 바다얼음과 바다얼음 사이가 까마득하게 멀면 지칠 수밖에 없다. 폴라베어인터내셔널이 ‘현재의 온난화 속도대로라면 2050년께 허드슨 만의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카리부(순록류), 남극의 펭귄, 동해의 명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조용히 지구 위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아니, 사라져가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북극곰은, 투발루는, 펭귄은 묻는다 ‘인간은 무엇을 놓을 수 있는가’

기후변화로 사막이 되어버린 미래의 지구를 그린 만화 '노루'의 한 장면 ⓒ안성호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어떨까. 태생적으로 이 섬은 자연에 취약했다. 투발루가 위치한 푸나푸티섬의 전체 길이는 12㎞,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오가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면적도 2.8㎢에 불과하고, 폭이 가장 좁은 부분은 10m, 가장 넓은 곳은 400m다. 해발고도 역시 3m 안팎이다. 가장 높은 지점인 활주로 옆 둑이 3.7m, 그런데 바닷물의 높이는 점점 올라오고 있다. 

주민 테무키사 마우마우는 저자에게 집을 소개하며 “1층은 더는 안전하지 않다, 밀물 때 물이 마루까지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투발루 국립조수센터가 1993~2007년 투발루의 해수면 상승률 평균을 낸 결과는 6.0㎜, 지구 연평균 해수면 상승률(3.3±0.4㎜)을 훌쩍 넘긴 수치였다. 

투발루의 위기를 두고 지구온난화만을 탓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지반이 취약한 땅을, 2차대전 당시 미군이 활주로와 참호를 만들며 마구잡이로 판 것 또한 문제였다. ‘보로 피츠’라고 불리는 구덩이에는 보름마다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차올랐고, 소금기에 젖은 땅은 변해갔다. 투발루는 이제 지하수가 나와도 짜서 먹을 수 없다.

또 코카콜라와 텔레비전, 화석연료 등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대가, 쓰레기 문제로 투발루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쓰레기 처리장을 만들 정도로 투발루의 땅은 넉넉지 않다. 그렇다고 문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게 다 너희 잘못’이란 비판도 적절치 않다. 2004년 국제에너지지구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73톤, 한국은 9.61톤인 반면 투발루는 0.46톤(유엔기후변화협약 1996년 자료)뿐이다. 

투발루를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히는 주범은 결국 ‘우리’다. 오래 전 뉴질랜드로 이주한 수아말리 이오세파 목사는 “투발루보다 더 평화로운 나라는 없다, 투발루는 낙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자원은 섬 여기저기에 열린 코코넛 열매와 섬 앞의 초호에서 하늘거리는 물고기들이죠. 우리는 한 때 그것으로도 충분했어요. 그런데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느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자 술 취한 사람들이 생겼고,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자본주의가 이끄는 지구화가 남태평양의 조그만 낙원을 파괴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지구화는 정점에 이르러 지구온난화를 가져왔죠.”

북극곰은 걷고 싶다. 투발루 사람들은 고향을 지키고 싶다. 펭귄은 도도새의 비극을 원치 않는다. 이 모든 문장들의 끝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인간은 무엇을 놓아버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