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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2014년 12월 16일 밤, 나는 조금 무기력하다

"국가의 핵심적인 결점은 대외적인 무력의 사용을 촉진하고 아무리 민주적인 제도 내에서라도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무기력한 절망감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결심을 굳힌다면 우리는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깨닫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방금 책장을 덮은 러셀의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에서 옮겨뒀던 문장들을 쭉 살펴봤다. 이 두 개의 문장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무력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의 크기는 거대하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두 사람이 70미터 높이 굴뚝 위로 올라갔다. 지난 토요일 일이었으니 벌써 4일째다. 겨울치곤 포근했던 날씨도 저 천공 위에선 소용없을 테지만, 바람이 점점 매서워지고 있다. 안방 커튼 사이로도 냉기가 스며들어오는데 그들은 그 차가운 공기 속에 철저히 내동댕이쳐져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 달 넘게 서울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은 전광판 위에서 달달 떨고 있는 사내들도 있다. 또 내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어느 거리에서 누군가는 추위와 싸워가며, 고독과 냉소, 그리고 무관심과 싸워가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버티는 것이 어느 정도 무게의 일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버텨야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셀 수 없이 많은지도 마찬가지다.


12월 15일 오전 경기도 평택공장 내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오른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손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하지만 우리의 펜은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우리의 눈과 귀, 손과 발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권력암투란 과연 나와 그대들의 삶에 따뜻한 밥 한 술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물론 알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정당성'이란 세 글자가 얼마나 엄중한 의미인지. 그것을 위해 피흘린 수많은 선배들 덕분에 나는, 우리는 운좋게도 빈 종이에 저들의 눈꼴사나운 다툼을 기록하고 전할 수 있게 됐다. 늦은 밤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랏님을 욕해도 잡혀가지 않는 상황이 됐고, 무엇이 정의냐며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지금 우리의 기록은, 우리가 그렇게 운좋게 물려받은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고 조금이라도 시곗바늘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을 막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시대의 과제'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말이다. 나는 자꾸 회의한다. 아니 슬퍼진다. 무기력해진다. '연대'라는 말을 굳게 믿었는데 그 무형의 자산이 과연 저 천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과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의 나날들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의심스럽고, '연대'라는 말로 포장해 '그래 나도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뭐 하나 했네'라며 자족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글퍼진다. 좋아요 한 번, 리트윗 한 번이 과연 얼마나 힘을 보탤 수 있는지, 그것이라도 할 자격은 있는지 냉소하고 있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낀다. 절망감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지만 2014년 12월 16일 밤, 나는 조금 무기력하다. 왜 사람들은 고통받는가.


씨앤앰 하청업체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요구하며 서울 파이넨셜센터 앞 광고탑 위에서 농성 중인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강성덕씨와 임정준씨의 11월 14일 모습.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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