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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맥주가 맛있는 그집

제주의 여섯번째 밤, 우리는 고민했다. '과연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우연히 피자와 맥주 이야기가 나왔고, 화제는 자연스레 수제맥주로 이어졌다. 그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제주시내에 혹시 수제맥주집이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 '보리스 브루어리'를.


제주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브루마스터' 보리스 데 메조네스는 스페인사람이다. 한국인 아내의 고향 제주에 정착한 그는 수입보리의 비싼 가격 때문에 제주보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주보리로, 그는 세계 맥주대회에서 수차례 상을 거머쥐었다. 블로그 등에 올라온 글을 보니 가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아무래도 만날 운이 없었나보다. 직접 "정말 맛있어요!!!"라며 엄지를 척 들어서 말해주고 싶었는데.



건물 외양이나 내부 인테리어에는 특별한 구석이 없다. 오히려 낡고 오래된 호프집 같은 인상에 깔끔하고 세련된 프랜차이즈 주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피할 법한 모양새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 한 쪽을 몇몇 상장들이 채우고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맥주펌프가 눈에 띄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옥 건물을 실내로 옮겨놓은 듯한 장식을 보니 전주에서 갔던 주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메뉴판 역시 오래된 경양식집 스타일, 게다가 맥주 메뉴판은 A4용지를 코팅한 것이다. 





하지만 맥주 메뉴판의 내용을 찬찬이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화려한 경력과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그동안 몇 차례 수제맥주를 먹어보긴 했지만 대개 값이 비싼 편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리 저렴해도 8000원 이상이었다고 기억한다. 한 잔에 500cc 미만이었는데도. 그런데 '보리스'에선 질좋은 수제맥주 500cc 한 잔을, 6000원이라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또 흑맥주와 페일에일은 전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수제 맥주다. 



우리는 일단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J보리스와 필스너 보리스를 주문했다. J보리스는 100% 제주산 보리만을 사용해 만든 맥주란다. 나는 필스너를 먼저 맛 봤는데 시큼한 과일향에 깜짝 놀랐다. J보리스를 목넘김한 다음에는 좌절했다. '내가 그동안 마신 맥주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나'하고. 시중 맥주와 비슷한 향이지만 더 깊었고, 풍미가 느껴졌다. 저절로 "맛있다!"란 말이 튀어나왔다. 남편은 "오늘 순댓국에, 팥빙수에, 돔베고기랑 한치회까지 먹었는데 '맛있다'는 말은 처음 한다"며 웃었다. 살짝 민망했지만, 사실인 걸 어떡할까. 개인적으로는 시큼하고 부드러운 필스너 보리스보다는 묵직한 J보리스가 더 입에 맞았다. 둘다 훌륭하다는 말은 입이 아플 정도고. 



그렇게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다시 메뉴판을 뒤척였다. 이제는 페일에일 보리스와 흑맥주 보리스를 먹을 차례! 특히 흑맥주는 기네스도 이긴 맥주라며 호평이 자자해서 궁금증이 컸다. 그런데 맙소사. 이날은 흑맥주가 없단다 ㅠㅠㅠㅠ 어쩔 수 없이 페일에일만 시켰다. 과일향과 카라멜향이 나는 맥주라 페일에일도 무척 궁금했다. 얼마 전 OB에서 나온 페일에일을 먹어봤지만 향은 딱히 기억 안 나고, 조금 깊고 쌉쌀한 맛만 기억났는데, 이곳의 페일에일은 어떨지... 



J보리스보다 더 진한 카라멜색의 페일에일은 이날 내가 꼽은 최고의 맥주였다. 아 사진 보니까 또 먹고 싶다...ㅠㅠㅠㅠㅠ 나처럼 쉽게 '맛좋다'고 하는 막입(;)조차 보리스 맥주와 시중 맥주의 차이는 확연하게 느껴졌다. 아래 포스터대로 '맥주 가져와'를 연발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앞으로 제주시에 가면 보리스는 꼭 발도장 쿵 찍는 집이 될 것 같다. 아 또 먹고 싶다. 내년 설까지 잘 참아야지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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