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기록하는 것이 자기 일이란 점을 강조했다. 언제부터 작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게 됐는가.
이선옥 : 스스로 나를 작가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명함이나 바이라인의 '르포 작가'라는 직함은 취재할 때 쉽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거지 아직도 그런 표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난 기록 노동자다. 난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계급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마찬가지로 스스로 나를 노동자라고 칭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작가라는 말에 담긴 허영에 경멸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웃음) 나를 떠받치는 의식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논란 때 진중권 씨가 나를 가리켜 '무명작가 이선숙'이라고 했다. 얼마나 무명이면 이름도 틀렸겠나. (웃음) 작가 앞엔 그렇게 '무명'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기록 노동자라고 했을 때, 무명이냐 아니냐는 전혀 상관이 없다. 직업으로서의 기록이고, 그래서 굳이 위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거다.
프레시안 : 당신이 쓰고 있는 르포란 글쓰기 형식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정의를 보더라도 상당히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한국에서도 그때그때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선옥 : 평소에 르포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갖고서 쓰는 건 아니다. 다만 르포에 있어 중요한 걸 꼽으라면 '현장성'이 첫 번째고 단건 기사에는 담기 어려운 심층성이 두 번째, 세 번째는 쓰는 사람의 주관일 것이다. 내가 왜 이 얘기를 쓰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르포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레시안 : 언젠가 트위터에서 "(다른 르포 작가들보다) 내 얘기를 많이 쓰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방금 말한 세 번째 요소, 즉 쓰는 사람의 주관을 강조한 대목이다. 이 주관이 기록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자기들이 생각하는 상(像)과 부딪히거나 혼선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 같은데.
이선옥 : 가끔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노동자들도 최대한 자신들이 거룩하고 선하게 묘사되길 원하니까. 그런데 그때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그 사람들을 불쌍하고 처참한 사람들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각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 어떻게 써 주기를 바란다고 느껴도 내 스스로 수긍이 안 되면 사실 왜곡을 하지 않는 선에서 절대적으로 내 판단에 따라간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느냐'보다 큰 문제는 사실 투쟁 내부에 있는 갈등을 굳이 끄집어서 쓸 것인가 말 것인가다. 그건 전적으로 내 판단의 영역이다. 당사자들이 원치 않더라도 그 갈등에 대한 언급이 내가 쓰려는 주제에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선에서라도 반드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노동자들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그분들이 정규직 한국철도공사 노동조합 사람들과 갈등이 좀 있었다. 정규직 노조가 이들의 투쟁에 무관심하고, 노조 위원장이 농성장에 한 번도 안 왔다든지 하는 거였다. 사실 정규직 철도 노조가 그들을 지원하는 부분도 있고 외면하는 부분도 있는데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부각시킬 것이냐는 내 판단의 영역이고, 나는 비정규직 쪽에 마음이 더 가니까 굳이 빼도 되는 정규직 노조와의 갈등 얘기를 쓴 거다.
그런데 원래 인터뷰에선 글로 옮긴 것보다 그 언급을 할 때 표현 수위가 더 높았고, 그 표현을 완화한 게 일종의 절충이라고 본다. 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니, 누군가는 "언론에 우리 욕했어? 걔들 생계비 끊어!"라는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책임' 부분을 드러내면서도 추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프레시안 : 당신의 글을 포함해서 한국의 현장 르포가 집중하는 분야의 특성상, 글이 너무 비장하고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는 독자들도 있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읽게 되기까지의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런 재미라든가 발랄함을 요구받는 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선옥 : '밝게' 쓰는 것과 '쉽게(읽기 쉽도록)' 쓰는 것은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다.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보고, 문학적인 수사가 중시되는 글은 쓰지 않을 거라고 혼자 마음먹은 적이 있다. 아름다운 문장에 욕심을 부리기보다, 독자들에게 노동 이야기를 문턱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쓰자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밝게'는 좀 뉘앙스가 다르다. 이런 요구는 최근 운동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촛불부터 시작해 지난해 희망 버스까지 소위 운동 조직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과 섞이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운동권들은 '집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 밝고 즐겁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됐다. 하지만 알다시피 조직이 바뀌는 속도는 더디다. 속도를 못 따라간다고 운동권은 어둡고 칙칙하고 후지다는 식으로 발랄함을 강요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한다.
운동 현장에도 일상과 마찬가지로 소소한 웃음과 행복이 스미는 순간이 있고, 보편적인 감동 같은 게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비장한 운동권만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부각해서 쓰려고 노력하지만, 사안들이 워낙에 가볍지 않고 내 능력도 부족해서 한계가 있다.
# 이선옥 : …(중략)… 어쨌든 그 작업을 '해명'이라고 표현했을 때, 내 입장에서 풀어서 밝히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잘못 전달되는 '사실'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네가 하는 게 무슨 노동이냐'라는 공격에 대한 것이다.
프레시안 : 사실에 대한 해명은 앞서 이야기했고, 그 공격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이선옥 : 중간에 논란을 증폭시켰던 진중권 씨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진 씨는 논란의 프레임을 '표절', '저작권'으로 옮겨버리는 역할을 했다. 인터뷰, 즉 그 노동자의 말에 무슨 저작권이 있냐고 물으면서부터다. 쌍용차 문제를 널리 알려야 할 시점에, 한 개인이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표현한 거다.
그건 기록 노동에 대한 멸시고 왜곡이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센 단어를 찾고 싶을 정도다. 인터뷰해서 글 써본 사람들은 그렇게 함부로 말 못한다. 인터뷰이가 내뱉는 말이 곧 인터뷰 글이 되는 게 아니니까. 쓰는 사람이 덜고 빼서 구성하는 거고, 모든 문장이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공공재인 팩트를 사유화한다"는 말도 했다. 노동자들의 발언은 공공재인데, 내가 그걸 사유화해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만일 집회 중에 나온 노동자의 발언이라면 그 팩트가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자기 문장으로 쓴 경우라면, 설사 그 인터뷰이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공재인 팩트를 사유화한다"고 얘기할 수 없는 거다. 이에 대해 "그 대목은 원래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내용이고, 다른 루트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공지영 작가의 인식 역시 기록 노동에 대한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기록 노동자들과 일부 사람들이 분노했던 지점은 그거였다. 노동 문제에 대해 쓴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수고한 노동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누구보다 앞장서서 글 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짓밟은 셈이다. 그것도 "왜 숭고한 척 하느냐", "당신들의 신파가 지겹다", "내 생각엔 내 글이 더 나은듯 슝==3" 이런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자기 노동에 대해 정당한 인정과 존중을 요구하는 게 어떻게 신파가 되는가.
# 프레시안 : '의자놀이 스캔들'이라는 표제로 일련의 일들을 중계한 언론에도 불만이 있을 것 같다. 앞서 노동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 부족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는데,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선옥 : 일단 노동 문제를 다루는 비중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적다고 생각한다. 극한 상황들이 벌어져야 자주 다룬다. 하지만 사람이 죽기 전에, 그들이 단식을 하거나 철탑에 올라가기 전에 그러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요 언론 중에) 노동 섹션이 따로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경제의 하위 분야나 사건 사고로만 다룬다. 나는 부동산 섹션은 따로 있는데 노동 섹션이 없는 상황 자체가 매우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현주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안 쓰니 내가 쓴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노동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언론인들과 기록자들이 있고, 그들이 떠들지 않았더라면 지금 만큼도 안 됐을 거다. 내가 어느 지면에 한두 문장 쓴 걸 어떻게 알고 연락해 주는 기자들이 있는데, 그들과 사업장을 연결해줄 때마다 흐뭇하다. 그런 경우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 내가 쓰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지면에서도 상호 보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현장 기록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면 좋겠다. 지면이나 취재의 한계로 기사는 '한 줄 사건'으로 나가더라도 우리가 그걸 보완하는 심층적인 르포를 써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장 기록 노동자들은 일단 현장을 알리는 게 다급하고 게재 기회가 아쉬운 입장이라 금전적인 대가를 생각하지 않는데, 그에 대한 대가를 작게나마 꼭 지급했으면 한다. 그래야 상호 보완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프레시안>, '무명 작가' 공지영·진중권에게 묻다 "르포가 뭔가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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