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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문학과 비문학 사이의 르포

<의자놀이>와 관련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신형철님의 글



르포문학의 힘은 무엇보다도 해당 사건의 본질을 누구보다 더 깊게 알고 있는 저자의 강력한 텍스트 장악력에서 나온다. 공유된 사실에서 미답의 진실을 끌어내는 힘 말이다.


이 책에 그것이 있는가? 충분하지 않다. 이 책의 저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서 이 세상 누구보다 깊게 알고 있는 이의 자신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는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을 것이다. 책에 밝힌 대로라면 저자가 쌍용차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겨울 어느 날’이다.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취재와 집필이 모두 완료됐다. 그만큼 다급했을 것이다. 그러니 6년 동안 쓰인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나 인터뷰에만 1년이 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같은 책들을 기준으로 이 책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그 대신 저자는 자신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하고, 인용에 기꺼이 의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진솔하게 아연해하고, 혹자들은 감상적이라고 할 만한 문장들을 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단점들이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수많은 분이 함께 만들었다”는 저자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지만, 이 책을 끌고 가는 겸허한 목소리는 확실히 이 작가의 것이다. 이 목소리가 르포에 대한 독자들의 부담감을 눅이는 데 성공했다. 저자의 이름값만으로 책이 이렇게 팔리지는 않는다.


부기. ‘인용 논란’도 이 책의 이런 독특한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책 후반부에 출처가 있으니 도용 운운은 당치 않지만, 유독 그 한 부분만 본문 내의 출처 설명이 빠져 문장의 주인이 헷갈리게 됐다. 독자의 ‘감정의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그랬다던가. 촉박하게 쓰인 탓에 르포로서의 밀도가 옅은 원고에 힘을 싣기 위해 정서적 울림을 높이려고 했으리라. 이 선택에 악의가 있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되풀이 지적하는 일로 이 소중한 책에 대한 다른 모든 토론을 대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겨레21> 제927호 중에서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8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