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012118005&code=990399&s_code=ao037
... 아빠가 병원에 있던 여름도 더웠다. 의식이 없는 아빠를 간호하느라 지친 엄마는 의사들과 걸핏하면 싸웠다. 아빠를 담당하던 레지던트는 엄마가 시비를 걸 때마다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때문에 다른 환자를 돌볼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간병인을 바꾸시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했다. 회사를 옮긴 지 얼마 안돼 정신이 없던 나는 그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루는 도저히 못 참겠어서 외근하는 척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도 나도 한 치도 지지 않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싸웠다. 이긴 사람은 없었다. 서로 노려보며 펑펑 울기만 하다가 일어났다.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버스가 오지 않아 한참을 뙤약볕에 서 있는데, 길 건너에 엄마가 보였다. 손에는 냄비가 들려 있었다. 튜브로 유동식을 공급해야 하는 환자에게 이열치열 보양식을 먹이겠다고 설렁탕집에 가는 모양이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느린 화면처럼 걸어가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또 울컥 눈물이 나왔다. 인생이 바닥에 처박혀도 나는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엄마는 아빠를 간호해야 했다.
어디에 있든, 어떻게 아프든 살아있는 한은 멈출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삶의 비정이고 숙명인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위로일지도 모른다. 멈추었다면 나는 그 막막한 시간 속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길의 끝이 늘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아서 나는 조금씩은 성장했던 것 같다.
요즘은 긴 글을 하나 쓰고 있다. 새로 시작한 글은 아니다. 시작한 지 몇 년 되었는데, 좀 더디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번에는 끝내야지 다짐을 하면서 벌써 여러 계절을 넘긴 글이다. 여전히 쉽지는 않다. 게으른 성정도 여전하고, 날씨는 미친 듯이 덥고, 한 달이나 방학을 하는 유치원생 아이는 날마다 놀아달라고 조르고, 7년을 살림해도 늘지 않는 솜씨에 집안은 늘 엉망이고, 챙겨야 할 대소사는 더위도 먹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중이다. 어떤 날은 한 줄, 어떤 날은 한 문단, 그러다 가끔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예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소설을 삶에 견주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소설을 쓸 때에도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막막하고 고달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온다.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고 넘어가면 명작이든 졸작이든 한 편의 소설이 나오는데, 모르겠다 싶어 접어버리면 그때까지 써놓은 건 소설도 문장도 아닌 애물단지들이 되어버린다. 이번에는 꼭 마침표를 찍어야지 벼르는 중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막막하지만 그래도 하루 한 줄이나마 멈추지 않고 끝까지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멈추면 실패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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