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926호 '그것은 우리 사회의 죄와 벌' 중에서
대검찰청에서 펴낸 <범죄분석>을 보면, 2010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행) 가운데 범행 동기가 ‘현실 불만’으로 조사된 사건은 모두 371건으로, 전체 강력범죄 2만3332건 중 1.6%를 차지했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살인(실제 범행이 이뤄진 경우, 준비만 하거나 실패한 경우 포함)이 70건, 강도가 48건, 방화 166건, 성폭행이 87건이었다. 살인은 발생 장소가 오픈된 곳인 ‘노상’인 경우가 전체 살인사건의 22.2%를 차지했다. 살인을 저지른 이의 직업은 무직(45.4%)이 가장 많았다. 학력은 고졸 이하가 60%를 넘었다.
범죄는 한 사회가 목도하게 될 이상 징후를 사전 혹은 사후에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4년 전인 2008년 10월 서울 강남의 한 고시원에서 분식점 배달원일을 하던 30대 남자가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상이 나를 무시했다”는 것이 범행 동기였다. 그해 7월에는 막노동일을 하는 남성이 “세상이 싫어 교도소에 가고 싶었다”며 시청 민원실로 뛰어들어가 직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4월에는 “세상이 싫어졌다”며 길 가던 여고생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에는 교통사고 장애로 실직한 60대 남성이 대구 지하철에 불을 질러 200여 명이 숨졌다. 1991년 “돈도 없는 촌놈”이라는 괄시를 받은 농민이 대구의 한 나이트클럽에 불을 질러 16명이 죽었다. 그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번번이 일터에서 쫓겨나 막노동일을 하던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놀던 어린이 등 23명을 자동차로 밀어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족의 해체, 과도한 경쟁, 사회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불안, 기댈 수 있는 사회 안전망 부재 등의 진단이 나왔다. 지금과 마찬가지다. 20년 전부터 범죄는 사회의 이상 징후를 경고하는 빨간불을 켰다. 20년 전부터 동일한 진단이 나왔다. 20년째 처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병폐와 충격의 임계치는 계속 상향 조정됐다. 사람들은 또다시 칼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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