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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안녕, 멘붕의 날. 안녕, 베트맨.

# 남은 시간은 5분이었다.


세 시간 정도 미아삼거리역 안에 주저 앉아 기사를 고치고 있었다. 영화 시작시각은 9시 50분(알고보니 55분이었다), 일찍 영화관에 와있던 그는 한 시간 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급하게 투닥투닥 고친 기사를 본 선배는 한 마디로 '이건 아니잖아'를 말하고 있었다. 마이크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갑자기 열차가 들어온다고 알리는 안내방송 소리가 났다. 머리 속이 하얬다. 예매 취소가 가능한 건 영화 시작 20분 전이고, 현재는 9시 25분. 더 늦기 전에 영화표를 취소하라고 해야 하나, 나는 왜 기사를 이따위로 써서 퇴근 후에도 이러고 있나, 어깨와 목은 왜 자꾸 말썽인가...


"너 지금 지하철이지?"


선배의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단 볼 일 보고, 내일 아침에 내가 일찍 볼 수 있게 고쳐놔" 


허겁지겁 노트북을 파우치에 넣고 수첩, 휴대폰 등을 챙겨 극장으로 갔다. 한쪽에 앉아 노트북으로 '응답하라 1997' 등등을 찾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서러움이 밀려왔다.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게 힘들게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봤다.


영화 분위기를 가장 잘 묘사한 포스터 아닐까.


# 강렬한 만큼 쉽게 잊힌다. 내게는 <다크나이트>가 그랬다. 말라붙은 광대분장에도 감춰지지 않는 조커의 광기만 남아 있었다. 이번 작품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완결편인만큼 전편들을 복습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배트맨 비긴즈> 좀 다시 볼까 생각도 했다. <다크나이트>는 한 달 전쯤이었나? 지인 집에 놀러가서 음주 관람 중에 잠들어버렸지만, 일단 본 걸로 쳤고.


아무튼 영웅은 갔다. 자동비행장치가 달린 '더 배트'와 부모님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는 저택과, 고통과 번뇌를 태워가던 동굴 속 비밀기지를 그대로 남긴 채. 


전작의 성공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다크나이트>에서 고담시립병원(?)을 통째로 날려버렸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엔 거대한 스타디움도 모자라 고담시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빌딩과, 고담시에서 외부로 나가는 다리들을 폭파시켜버렸다. 한층 더 거대하고 파괴적인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느꼈나보다. 고담시를 위협하는 대상도 악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핵, 그것도 핵융합 원자탄이 등장한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 모든 무간지옥은 배트맨의 활약으로 수습된다. 


물론 <다크나이트>에서 혼자 유유히 악을 무찌르던 그의 싸움 방식은 달라졌다. 나이를 먹었고, 사람들은 떠났고, 몸마저 망가진 그는 누군가와 '협력'하는 법을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는 영화 속에서 배트맨과 고담시민들이 힘을 모아 베인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가리켜 '모든 시민은 영웅이다'라고 표현하더라. 살짝 과장법이라 느껴지지만, 어떤 면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도 아니니 어떤 장면이, 또는 어떤 캐릭터의 설정이나 행동이 무슨 의미였을까를 고민하고 분석할 깜냥은 못 된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아쉬웠던 건, 너무 많은 상황과 설정이 하나로 버무러져있다보니 '어? 왜 저러지?' 싶은 장면들이 자꾸 거슬렸다는 점. 아직도 나는 궁금하다. 배트맨은 왜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고담시를 지키려고 했을까,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고담시로 돌아온 걸까. 


어쨌든 안녕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충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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