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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그래서, 그런데, 그리고

"오늘 저녁은 희망식당 2호점!" 퇴근길의 기쁨과 배고픔을 안고 상수역 4번출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을 돕는 희망식당 2호점이 처음 문을 연 날이었다. 메뉴는 고등어김치조림이랬다. 서강대교를 건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받던 동기는 "가봐야겠는데?" 한 마디를 했다. 곧이어 내게도 전화가 왔다.


"좀전에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한 남자가 분신을 했다는데, 너는 병원으로 가봐." 얼큰한 고등어김치조림보다 맵고 붉은 현실이었다.


영등포구의 한 병원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ENG 카메라를 멘 방송사 촬영기자와 DSLR을 손에 꽉 쥔 신문사 사진기자들.  카메라에 붙어 있는 회사 스티커만 얼핏 봐도 주요 언론사 가운데 빠진 곳이 없었다. 피곤에 절은 파김치처럼 푹 처진 얼굴의 수습기자들도, 조금 더 감각있어보이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껴 선배에게 전화했다. 허둥대는 보고에 선배는 "소희야, 보고를 하려면 이것 확인하고, 또 저것도 알아보고 해야지. 얼른 다시 파악해봐"라며 전화를 끊었다. 막막했다. 후다닥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몇 시쯤 병원에 도착했는지 외에는 내용이 없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신원은 어떻게 되는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단 한 줄의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없어 마음이 무거웠다. 무작정 119에 전화했다. '빨리 끊어야 하는데, 알려줄 것 없음 그만 좀 말하지...' 속으로 타박줬던 119 안내원분이 나를 살렸다.


안면과 상반신, 대퇴부에 3도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전신의 50%. 네 시간을 꼬박 기다린 끝에 "통합진보당 당원이 맞다"는 당 관계자의 말을 들었다. 얼굴을 잃어버린 그 남자는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버스를 운전하다 해고된 후 덤프트럭을 몰고 있고, 지역의 비정규직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형을 만나고 온 동생은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에 표정이 더 비어갔다. 중2, 중3쯤 됐을까? 고개를 숙인 여자아이는 손으로 연신 눈가만 훔치고 있었다. 오빠로 보이는 아이도 말이 없었다. 얼굴을 잃어버린 그 남자는 누군가의 형이고, 아버지였다.


물어야 했다. "당원이 맞나요?"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까?" "12일 중앙위에서 조준호 대표를 폭행한 사람이 맞습니까?" 짐작은 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우고 있는 한 사람을 병원 복도 끝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익숙한 얼굴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말과 말로 끊임없이 서로를 찌르고 할퀴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편이냐'고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정황은 충분했다. 근데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당권파 맞습니까?"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날카롭게 벼려진 질문만큼, 대답해야 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그랬다.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당권파냐 아니냐가 중요합니까?" 다음날에도 여전히 병원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맞다. 중요한 건 사람 목숨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근데 '당권파'란 세 글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낙인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짐작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여전히 모르겠다. 물어야했을까? 알고 싶은 사람들은 분명 있을 테지만, 정말 질문해야 했을까? 모르겠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궁금증은 더 꼬리를 문다. '만약 독자라면'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해야하고, 그만큼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정치 공방일 때면 차라리 낫지 싶다. 여전히 적응은 안 되지만, 기세 등등한 나랏님들을 견제하고 감시할 몫은 분명 우리가 대신해야 할 일이니까. 문제는 '사람'이다. 다음날 또 병원에 갔다. 가족들이 12시 면회시간에 맞춰 주치의와 만난 후에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의료정보는 절대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주치의에게 전화했다. 위중 여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주인을 좇는 강아지마냥 그의 동생을 따라다녔다. 


"경찰에서 연락 없었나요?

".....어디 기자에요..?"

"아... 오마이뉴스인데요.."


동생은 입도 닫고 마음도 닫았다. 원무과에 쫓아들어갔다. "나가시라고요!" 수 차례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나와야 했다. '내 가족이라도, 아니 내 가족이라면, 나라도 멱살을 잡고 가만 안 두겠지.' 알면서도 물어야 했다. 알면서도 물을 마셔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고, 화장실에 가야 했고, 기사를 써야 했다. 


'당권파냐'는 질문을 던진 기자가 꽤 화제였나 보다. 이날 기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온몸을 불사르면서까지 그가 지키려했던 것이 '당권파'라는 세력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때 알고 지내던 분의 글이라 황당했다.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는 말은 분위기와 전후 사정을 걷어낸 해석에 불과하다.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긴 하다. 하지만 '금기시할 일'과 '조심해야 할 일'은 다르다. 적어도 제 몸에 기름을 끼얹고, 제 손으로 불을 붙인 그를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선 필요한 정보였다. '이해'라는 단어는 차마 쓰지 못하겠다.


문제는, 다시 '사람'이다.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올 테고, 아주 조금이나마 '인간이 할 짓인가' 자책해야 할 상황을 겪기도 했다. '만약 여기가 장례식장이었다면?' 아찔했다. 아마 언젠간 겪겠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혹은 끊임없이 물고 뜯는 전쟁터에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왜요?"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고들 하던데요"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어떤 칼날보다 깊숙이 폐부를 찌를 질문들을 던져야 할 상황들이 오겠지. 


무엇이 맞고 틀리다 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계속 어려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