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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4월의 풍경 하나

# 12%가 남았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오후 내내 휴대폰만 만직거린 탓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죽어라 해도 시간이 안 가서 멀뚱멀뚱 있다보니, 사무실에서 나올 때 100% 꽉 차 있던 배터리 용량이 벌써 닳아 있었다.


출근 둘째 날의 후반부는 그렇게 끝났다. 오전에는 어제 작성하다만 기사를 마무리하느라 다 보냈고, 임원분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집밥 같지만 미역국은 맛없던 백반을 먹었다. 몇 년 만에 도착한 신림역 근처는 유세 중인 후보와 선거운동원으로 붐볐다. 흙탕물을 튀기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고, 동기와 나는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선배들을 만났다. 딱 거기까지가 4월 10일 모험의 전부였다. 


'수습'이 필요한 시절이다.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는 날은 꽤 여러 번 상상했는데, 정작 그 이후는 머릿속에 없었다. 고작 이틀째이긴 하지만, '느낌이 어때?'라는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기 힘든 원인인 것 같다. 상황이 '수습되지 않는' 이유도 있다. 내일이 선거날이어서 사람들의 이목은 물론, 정신마저 모두 그쪽에 쏠려 있다. '왔니?', '밥 먹자' 등 관계 유지와 생존에 필수적인 몇몇 요소들을 잊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로 신입들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궁금한 것 없냐'고 선배들이 묻는다. 겨우 이틀째라 몇 개 답하고 나면 질문 주머니가 텅 비어버리는데, 눈 마주침이 어색한 선배들은 자꾸 묻는다. "물어볼 것 없니?"라고. 마찬가지로 어색한 우리들도 자꾸 버벅거린다. "음, 어, 근데요…"라는 말 뒤에 붙일 살을 찾느라고.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또 하나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은 즐겁다. 약간의 어색함은 피할 수 없지만.


# 막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는 푸르딩딩하다. 어원도 모른 채 우리는 그 파란 빛깔을 '몽고반점'이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을지 모르는 땅에서 온 남자가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 "잘못했어요, 아저씨"라고 애원했던 그녀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백 개 조각으로 남아버리게 했다.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심정이 어떠시죠?"라는 말을 수없이 던져야 할 사람이 됐다. 누군가의 눈물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을 갖춘 '정보'로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누군가의 분노를 '이야기할 만한 거리인지 아닌지' 갸늠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사람'을 잊고 싶지 않다. 설령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잔혹함'이라고 해도,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 손쉽게 단어를 선택하고 싶지 않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잡혀가던 아빠, 검은 보호장구와 방패로 무장한 인간 벽 사이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읍소를 하던 엄마의 모습이 가장 오랜 기억이 될 수 있는 아이가 '식상한 얘기'라며 귀를 닫고 싶지 않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공포에 질려 끌려갔을 그녀와, '280여개 조각'이 되어버린 끝과, 누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아니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와, 단지 범인의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사건을 '제2의 수원 여성 살해사건'이라고 보도한 기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 '동사'로 살기 위해.


- 희망하지 않았고, 그래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희망퇴직자 2026명.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정리해고자 159명. 복귀하지 못하는 무급휴직자 461명. 공장 안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살았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죽은 자'들.


- 싸움은 고독했다. 무슨 짓을 해도 인터넷엔 기사 한 줄 뜨지 않았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앞에서 몸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동료들이 달려와 라이터를 뺏었다. "억울하고 답답했죠. 그렇게라도 해야 언론과 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 같았어요."


<한겨레21> 897호 '부디, 천천히 읽어주세요'


- 후쿠시마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같은 대열에 서게 됐다.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은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 공범이 돼버렸다..몇 분 만에 쓰나미가 도시 전체를 휩쓸고 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불렀던 곳에는 겨우 잔해만 남았다. …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 갓 태어난 딸은 살아있는 자루였다. 온몸이 구멍 하나없이 다 막힌 상태였고, 열린 것은 눈뿐이었다..증명서류를 받고 싶었다. 딸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도록. 나와 내 남편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우리 사랑때문이 아니란 것을.


- 집으로 돌아왔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쓰레기통에 던졌소. 막내아들이 졸라서 군모를 줬소. 아들은 절대로 벗지 않고 매일 쓰고 다녔고. 2년 후 아들은 뇌종양 진단을 받았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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