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그 무수한 의미들은 이내 타임라인의 희미한 잔상이 되어 사라져버립니다. 외침은 있지만 공감은 없고, 진영은 있지만 토론과 대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온갖 소문들이 진실을 압도하지만, 누구도 그 소문이 불러올 어둠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혼돈의 속도에 취해 우린 마치 기계처럼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개혁과 정의를 리트윗하지만 실은 더 많은 월급과 더 좋은 차와 더 넓은 아파트를 원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테크놀로지와 속도의 유토피아가 어쩌면 디스토피아는 아닌지 고민할 시간입니다. 속도라는 먹이를 먹고 자라는 이 괴물 같은 시스템이 어쩌면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형태의 감옥은 아닌지 따져볼 시간입니다.
-<슬로우 뉴스>, '당신에게 제안하는 새로운 속도' 중에서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 정작 우리는 그 속도에 끌려가고만 있을 뿐,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슬로우 뉴스'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 하지만 그것이 머리 속에 일으키는 파문에 '지금, 여기'를 되돌아본다.
언론사를 준비하면서 '어 내 생각이랑 많이 달랐네?'라고 느꼈던 순간이 많았다. 예상보다 '정치적'이고 '편향됐으며'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게 대표적이다. 한편으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늘 '새롭고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려는 언론사들의 행보가 가장 느리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 역시 의외였다.
포르투갈 신문 'i'의 본사 뉴스룸
누구나 '미래'를 말하지만, '변화'는 찾기 힘든 것도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 자체가 종이, 전파에서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고, 또 정보를 만들고 전하는 과정 전반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이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1)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 만들어서 홍보하기 2) 홈페이지 개편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정보의 유통'만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하는 정도랄까? 재작년 대학원 특강에서 고재열 <시사IN>기자가 "SNS는 이슈의 부활이 가능한 곳"이라고 외치며 '새로운 유통망'으로서의 가능성을 강조했던 딱 그 수준 같다.
외국 언론은 이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다. 인터넷을 '유통'만이 아닌 '생산'에도 접목시킨 실험을 시도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2009년 5월 경쟁지 <텔레그래프>가 하원 의원 646명의 활동비 청구 내역을 공개하는 특종을 보도하자 발상을 전환, 청구서 45만 8천여건을 모두 스캔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후 독자들에게 기사거리를 제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만 7천여명이 참여해 22만 1천여건건의 청구서에서 문제점을 찾아냈다. 방문자의 56%가 이 작업에 참여했고, 원본 문서가 공개되자마자 80시간 만에 17만 건의 영수증이 분석됐다.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도 같은 해 1월 1400페이지에 이르는 정부 예산안을 통째로 홈페이지에 올려 '문제 될 만한 부분을 찾아달라'는 비슷한 실험을 했다. 367명이 참여했다. <CNN>은 '아이리포트(iReport)라는 코너에 시민들이 올린 기사를 전국 단위 방송 뉴스로 내보낸다.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 때는 시민들이 직접 찍은 동영상이 5098건 업로드됐고, 이 가운데 345건이 실제로 방송을 탔다. 1
'오픈 저널리즘'을 디지털 전략의 핵심으로 둔 영국 가디언의 홈페이지
아예 <가디언>은 지난해 새로운 디지털 전략을 발표하며 '오픈 저널리즘을 전략의 핵심에 두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모기업인 가디언 미디어그룹 CEO 앤드류 밀러는 "가장 주된 전환점은 인쇄 기반의 조직 구조에서 철학적으로나 실행측면에서 디지털 우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신문 부문 구독부수와 광고 수익의 하락은 독자들과 광고주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디지털 플랫폼을 끌어앉게되면서 이젠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고 말했다. 편집국장 러스브리저는 "오픈 저널리즘(또다른 웹과 협업적이며 링크로 연결되고 네트워크로 묶이는 콘텐트)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지속적인 개척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담아내는 뉴스 역시 거듭나고 있다. 2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런 '개방과 협업' 자체가 아니다. 독자와 함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함으로써 언론이 이루려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답은 단순하다. '세상을 보는 깊은 눈'이다. 그것은 거대 권력의 비리와 음모를 파헤친 진실, 혹은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거나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다. 느리게 걷는 언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트렌드'가 아니다. '개방과 협업'이라는 저널리즘의 변화는 곧 빠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금 멈춰 바라볼 뉴스, '느린 뉴스'를 원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blahblah (0) | 2012.04.28 |
---|---|
4월의 풍경 하나 (1) | 2012.04.10 |
버티는 것에 대하여 (0) | 2012.03.14 |
우리의 '차선'은 어디에 (0) | 2012.03.10 |
- (0) | 201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