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있나요?”
휴대용 스피커를 주머니에 넣은 할아버지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연호 대표가 물었다. 황학시장에서 3만원을 주고 음악파일 600개를 담은 할아버지의 MP3 플레이어에는 없는 곡이었다. 북한산 진달래능선에 이름 모를 트로트 가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봄날이 가고 있었다.
18일 다섯 동기, 오 대표와 산에 올랐다. 행사명은 ‘대표 특강’이었다. 구름 덕분에 봄볕이 적당했고, 중간 중간 거친 숨을 가다듬을 때면 바람이 불었다. 곳곳에 핀 연분홍 진달래꽃을 지나치기 힘들었다. 어린 아이처럼 꽃을 꺾어 머리에 달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매끄러운 비탈길을 오르고, 크고 작은 돌덩이를 조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훈련 중이던 정체불명의 군인들, 트로트를 즐기던 할아버지와 머리에 꽃을 꽂은 우리가 봄이었다.
첫사랑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아이를 만나기 위해 동창회에 나갔다고 했다. 자꾸 자꾸 보고 싶어 A는 동창 모임을 직접 만들었다. B는 군 휴가를 나왔을 때 우연히 만난 옛 애인에게 편지를 부탁했다. 몇 주 후 꿈에 그녀가 나왔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후임이 말했다. “편지 왔습니다!” 5살 많은 오빠와 C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1년을 훌쩍 넘겼지만, 두 사람은 메일로만 만났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던 C에게 오빠의 편지는 가뭄 속 단비였다.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살아 있긴 한 건지…근데 예전에는 얘기만 해도 눈물 났는데, 정말 나이 먹었나 봐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걸었다. 북한산 기슭 암자를 지키는 목련나무 가지마다 눈송이가 그득했다. 봄날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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