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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뻐꾸기 둥지 위로

My Favorite Tweets #7

자동차를 잘아는사람은 무리하게 차를 다루지않고 음악을 좋아하는사람은 모든 음악을존중하며 돈을 많이번 사람은 돈을무서워하고 방송을 오래한사람은 더 긴장하고 대가를이룬 사람은 사람앞에 더고개숙이며 사랑을 아는사람은 사랑앞에 겸손하다 안다는건 존중하는것

'움직인다'는 것은 '진영론'의 습속을 벗어나서 자기의 발로 땅을 딛고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은 보는걸까 읽는걸까 애플의 교과서 아이패드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졌다지만 그 '진화된' 생태계에 들어갈 생각없다. 봄을 경계하고 들음을 귀히 여기라는게 여전히 나에겐 귀한 가르침이다. 책읽을 때 들리는 그 소리가 여전히 좋다. 읽는건 듣는거다

모든 뉴스에는 프레임이 묻어 있다. 단어, 문구, 헤드라인, 편집 등 어디에든. 그러나 불행한 사실은 뉴스를 생산한 기자도 자신의 프레임을 모를때가 많다는 것. 아마존 밀림에 사는 자는 자신이 얼마나 광활한 대지에 묻혀 있는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릴레이13] 양일혁 조합원() - "세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기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이 해직됐을때 아직...

'꿈을 이룬다'는 말의 의미를 타락시키는 이 사회에서 정말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은 투사가 되거나 무기력해지곤 한다

과학저널리즘을 둘러싼 과학자 vs. 기자 최근논쟁을 정리한 다이어그램 찬찬히 링크따라 보니 은근 재미..

 이공계 하면, 과학적 합리성을 떠올리잖아요. 그래서인지 외국에는 진보적인 과학기술자가 꽤 많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공계에서는 너무 좁게 가르치고 배워,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길을 즐겁게 택하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알랭 드보통). 함께가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가끔 혼자 있어봐야 하는 이유. 여행이든, 삶이든.

3. 명절도 연휴도 마찬가지. 다같이 일할 땐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쉬고, 때론 그냥 같이 아주 조금은 불편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네요. 불필요한 내용이나 수식이 하나도 없군요. 제목은 물론 내용에도 양자역학을 부정했다는 류의 거칠디 거친 표현이 안 보입니다. 수식에 대해 딱 사실만. 세상에. 근데 왜 국내에서는 그런 요란한 내용이 됐을까요.

 일본 아사히신문의 <양자역학 새로운 수식 발견> 보도 (cont) 

방금 그냥 한 얘긴 아니고, 논문 보니(물론 다 이해 못하지만) 어디에도 근간을 뒤흔드는 표현이 없어서다. 보다 보편적인 수식이 있고, 그걸 실험으로 확인한 정도? 이 정돈 작년 국내 연구진이 초끈이론을 보완한 보편수식 발표한 것처럼 드물지 않은 일.

어제 양자역학 근본이 흔들렸다는 기사가 돌았는데, 솔직히 좀 이상했다. 출처가 일본 외신과 연합이고, 외국발 과학뉴스는 잠잠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11월 그보다 덜하지 않은 연구가 나왔을 때도 조용했던 국내다. 지금 내 결론. 일본 호들갑에 낚였다?

네이처 온라인 에디터의 글. : Nine ways scientists demonstrate they don't understand journalism |

군부독재를 증오해야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 국가폭력이 한 개인 또는 가족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개인의 삶과 자유, 행복의 권리에 선행할 수 없습니다. 장태완사령관 가족의 비극이 우리사회에서 더이상 반복돼선 안됩니다.

미국 노숙자 연쇄 살해범은 이라크 참전 병사  정말이지 전쟁이란 궁극의 인권침해. 이래도 무력으로 평화를 지킨다고 믿을건가.

맞습니다. ‘축제’는 일본어투 한자어이므로 ‘축전, 잔치’를 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RT '축제'라는 말도 일본에서 온 말이라 '축전', '잔치'로 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제'라는 말을 안 쓰는 게 바람직한가요?

‘-는’은 동사에만 결합하여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볼 때 사건이나 행위가 현재 일어남을 나타내고, ‘-은’은 동사에 붙어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동이 과거에 일어났음을 나타내거나 형용사에 붙어 현재의 상태를 표현합... 

영국 국민들은 자국의 정부보다 BBC를 세 배나 더 신뢰한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와 김인규의 KBS를 신뢰도로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50주년을 맞은 KBS뉴스, 그동안의 뉴스가 불편부당했는가 이제는 진지하게 자문해 볼 때입니다.

미국내 고소득 상위 1%는 누구인가를 상세히 분석한 오늘 NYT기사에 감탄. 데이터저널리즘!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황현산칼럼, 한겨레)

과학적 논리도 불확실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영역에 따라 그 불확실성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요. 불확실성을 이유로 아무 결론도 내리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책임 있는 과학자의 자세라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고문으로 죽진 않아도 알바하다가 사육사하다가도 죽는구나. 이것도 무섭다.기억도 되지않는 죽음.

자본주의가 사람을 고친다고 말하지 마라. 자본이 사람을 병들고 죽게한다. ㅡ 삼성반도체노동자 반올림 주점에서.

복수노조는 어용노조를 몰아내는 도구도, 어용노조를 불러들이는 도구도 될 수 있다. 제도는 모든 경우에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는 황금률이 되지 못한다. 관건은 정치력으로 그 빈틈을 메워 제도를 각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박정근님의 구속... 저들이 보안하고자 하는 국가와 체제가 실제 어떤 것인지, 과연 보안할 가치나 있는 것인지, 누굴 위해 무얼위해 보안해야하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 보안이 될 것인지 근본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정말 x같이 웃기는 세상.

열등의식 드립? 심형래는 4년 짜리. 이건 길어야 1년 반짜리 싸움이에요. 안타까운 것은 정치를 통해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정의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하는데, 외려 정치를 통해 사람들이 단순해지고, 정의에 대한 감각을 내다버리게 되는 상황.

그는 열 손가락을 하나씩 꼽더니, 6개에서 멈췄습니다. 주5일 노동이 시행된 뒤 쉬는 날이 된 주말 104일 동안 연장근무 날이 며칠인지 묻는 질문에, '60일 정도'라고 답하기 위해서였죠. 그에겐 책을 읽을 시간도, 트위터를 할 시간도 없는 겁니다.

"나도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감은, 트위터에서 나를 각성시키는 온갖 아포리즘과 핵심이 담긴 분석들보다 더 깊이 마음 속에 가라 앉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딱히 자신의 삶에 불만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미도 몹시 춥군요. 미안하게도 어제 새벽까지 붙잡고 길게 인터뷰를 했던 2명의 20대 초반 고졸 생산직 노동자들은, 트위터라는 이 게토에 존재하는 온갖 말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해줬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마지막날처럼 삽시다.

내 절친은 상병때 보안대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채 만기제대했다. 10년 넘게 정실질환으로 고통받았고 50을 버라보는 지금도 고문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들의 20대, 19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다.

오늘 문장. "혁명은 시일이 지나야 믿는다(革已日乃孚.주역 혁괘 괘사)" 김근태 고문의 별세로 한 시대가 끝난 지금에야 우리는 민주화의 지난함과 소중함을 조금 이해한다. 논어 자로. "왕도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 세대 후에야 백성들이 인해질 것"

내년은 유신40년, 민주화25년이 되는 해입니다. 산업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건강한 모델을 내놓을 때입니다. 올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태준 선생과 김근태 선생을 뵈니 새삼 한 세대가 저문다는 걸 실감합니다.

대한민국쯤 살면서 마치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국민인듯 징징거리는건 참 보기 거슬린다. 결국 남은 안돕겠다는 얘기로 연결되기 때문이지. 더 열악한 상황의 사람들을 돕는건 자선이 아니라 인류의 의무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산다. 나의 안온한 일상은, 늘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겹쳐진다. 역사란 게 다 그렇다거나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라는 말은 어쩌면 사실이지만, 그게 우리의 기억상실과 무감각에대한 변명이 되어선 안 될것 같다. 

그리고 국내에 있는 양심수에게 매월 만 원씩 보내주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에게도 관심을... 

수감당한 병역거부자를 지원하는 플라워파워 계좌번호는 국민은행 762302-04-080883 (예금주 양여옥) 이랍니다...

2010.12.28 허위사실 유포 관련 전기통신기본법(미네르바법) 위헌. 2011.12.29 온라인 정치적 표현 규제 공직선거법 위헌 결정&제한적 본인확인제 폐지 검토..난관 남아있겠지만, 멋진 연말 뽀너스 같아요. 세상의 즐거운 변화..모두 고마워요

우리 대중매체는 왜 전문가영역의 과학뉴스를 보도할까? 원하는 지적 충만은 얻으려고? 정말 과학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싶어서? 대중매체는 전문가영역에서 왜 서성대고 있을까?

인간에 대한 파괴가 감행되는 이 밤중에 오늘 저 시적이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그 날, 고문의 방조자였던 라디오 하나를 단번에 박살내기로. (김근태, 1986년 탄원서)

"20여일 물고문・전기고문 당한 김근태는 변호인 접견실까지 기어나오는데 30분이 걸릴 정도로 몸이 걸레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고문일시・방법・가해자 기억해 고발하고 끝까지 싸웠다."(김두식 교수 )

고문당하는 비명소리를 덮어씌우기 위해 일부러 크게 틀어놓은 그 라디오 소리 속에서 천하태평으로 지껄이고 있는 남자아나운서들의 그 수다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근태, 1986년 탄원서)

밤새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들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돼지기름처럼 끈적끈적하고 비계처럼 미끄덩미끄덩한 것이었습니다. 살가죽에 달라붙은 그 비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김근태, 1986년 탄원서)

"그냥 그자리에 제가 있었을뿐입니다 고생히셨습니다 저를포함한 누군가를위해 대신 고생하셨습니다"

정치군부는 그렇다치고, 법치실현에 중요한 몫을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오늘의 법원,검찰의 무력함 속에서, 민간 지식인들인 판사, 검사의 비겁함 속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민주화의 꿈을 꿀 수 있을 것인가? (김근태, 1986년 상고이유서)

 저는 문학을 공부할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거짓된 희망보다 진실한 절망을 쓰라. 그것이 문학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기록하는 자(記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어떤 결기 같은 것이겠지요. ^^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 사람을 앞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제겐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새겨야 할 말이네요. 저도 꼭 그리 가르치겠습니다. RT 오늘 신문에서 본 글. <자식들에게 '항상 이기라'고 가르치니까 왕따 가해 학생이 나온다. '약하고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감싸주라'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이룬 것만큼, 이루지 못한 것도 자랑스럽습니다. -스티브 잡스 -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30년, 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생각과 먼 훗날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청암 송건호 선생 말씀. 2001년 오늘 타계

학생인권조례는 어느날 갑자기 뚝 진보교육감과 전교조가 던져놓은 선물이 아니라. 몇년전부터 학생인권의 제도적 보장을 얘기해온 청소년운동의 성과입니당. 언론들은 청소년활동가들을 운동의 주체로 보아주세염 ㅠㅠ

이 땅에서 “타워팰리스에 산다.”는 말이 생각 외로 많은 것을 드러내긴 한다. 집이 부자라든지, 그 집을 유지할 만큼 큰 돈을 번다든지. “진보”나 “사람사는세상”보다는 더 명확하다. 관건은 그게 정체성이 되는 현실을 바꾸는 데 있다.

짧고 경쾌하고 재미있게. 이건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자본주의 광고 카피의 언어이지 삶을 드러내는 언어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쌈박하게 말하는 입이 아니라 오히려 우물대고 반복하고 주저하는 목소리를 끈기있게 경청하는 귀가 아닐까.

인권이란 '될 수 있으면 많은'이 아니라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게'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인권은 촘촘한 망이 아니라 구멍이라곤 전혀 없는 튼튼한 고무막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보호받지 못할 자를 결정할 수 있나.

'우리는 편파적이도 괜찮아'라는 말만큼 게으른 자기 옹호는 없습니다. 진정 힘든 것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중립성은 기존의 기준점을 벗어나서 끊임없이 객관성을 추구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일관된 중립성의 기준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위안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국제적으로는 98년 UN 인권소위원회 보고서에 사용된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TIME지가 올해의 인물을 (몇년전 'You'에 이어) "시위자"로 선정한 것, 즉 형식에 대한 셀프편견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판단을 보며, 다시금 올해 민주언론상 선정에 대한 아쉬움만 커진다.

TV 방송의 공항철도 사고 분석, '하청 노동' 문제를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나?

지오(N)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특히 노무현 정권 하에서 농민이 경찰한데 맞아서 죽던 장면, 김주익씨가 크레인 위에서 자살하는 장면. 이런 거 전달하는 건 정말 재미없겠죠. 역시 가카를 까야..  Par 칼라티비 재미없어서 망했다. 팩트전달아닌가요.

철거민이 타죽어가거나 쌍용차 노동자들 얻어맏는 장면은 물론 재미없죠.  Par 칼라티비 재미없어서 망했다. 팩트전달아닌가요. 훌륭한 프로였지만 대중적 이슈를 만들거나 호응을 불러오지못해 사라졌다. 이게 나은가요.

언론인권센터에 따르면 방송과 통신의 불법음란물을 심의하겠다고 출범한 방통위가 지난 3년 동안 차단한 음란물 건수는 겨우 11건에 불과. 하지만 사회질서위반이란 명목으로 차단한 건수는 무려 1만6698건.

저는 투쟁도 싫고 싸움도 싫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데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단 사실이 슬픕니다. / 윤혜숙 

2008년 중앙일보가 베를리너 판형으로 변경하기 위해 윤전기를 구매한 비용은 대략 1200억원. 200억짜리 6세트였으니. 윤전기 시대가 가고 모바일 퍼블리싱이 대세가 된다면 윤전기를 대신할 개발자를 채용해야 할 텐데. 언론은 얼마나 투자를 할까

비용 절감을 위해 신문 인쇄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만 발행하는 케이스가 56개 일간지를 소유한 medianews그룹에서 실행될 모양. 우선 3개 일간지가 그 대상. 손꼽히는 대형 언론그룹이라 더 관심. 

신문 발행 중단하고 온라인은 유료로. 정말 벌어지는군요 RT: Papers to give up print on Mondays in favour of online reading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사회통합을 역방향으로 끌고 가는 이른바 ‘단절’이라고 부를만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

진보든 보수든 입으로나 글로야 뭘 표방 못할까. 정직이나 도덕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지오(N) 감독이 작품 속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할 때 작품은 본궤도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내 앞의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뒤통술 맞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지금처럼,

 지금도 그 피해자가 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진저리 쳐져요.

journalist의 역할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재정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일단을 소개하면서,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정말 뭘까요? 

좋은 자료. 근데 글제목을 좀더 중립적으로 "사법부판결과 ISD중재"라고 했더라면 좋았을듯 RT  한미 FTA: 사법부 판결에 도전한 ISD 사례(1차 정리) 

소동파는 "물 긷는 아낙에게 들려주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면 그것은 글이 아니다"라고 한다. 반대편엔 아도르노가 있다. 파편화된 세계의 통념에 저항하기 위해 글쓰기는 기존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야 한다. 글 짓는 새벽마다 저 둘 사이 어딘가에서 널뛰기.

과학한다는 자존심만으로 살아온 아빠는 사회를 너무 몰랐구나. 사회가 아빠를 버린것이 아니라 아빠가 사회를 버렸구나. 돌이켜 생각하면 자존심이란 나만의 울타리에 갖혀있어구나. 그것은 아빠가 만든 울타리란다. 넌 그런 울타리에 갖혀 살지 말아라.

과학이란 붕어빵을 찍어내는 기계가 이님을. 대한민국에서 과학자로 산다는것은 거렁뱅이 앵벌이고 잠재적인 범죄자이고 자꾸만 세상에서 회피하려는 도망자이다. 아들아, 넌 과학자가 되지말아라! 초라하고 슬픈 아빠의 삶을 살지말아라!

 네, 그걸 예지력이라고 표현하는건 오버구요, 그와 같은 분명한 팩트를 입만 열면 팩트 운운하는 언론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현실이 나꼼수의 영향력을 증폭시킨 듯해요.

나꼼수가 대단한 예지력을 감추고 있었던 건 사실 아니다. 설령 선관위 홈피와 박원순 후보 홈피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한나라당의 조직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치더라도 그것이 선관위 내부 공모에 따른 게 아닐지라도 갑자기 투표소 바뀌치기한 건 꼼수 맞으니까.

 초과근무수당은 일반직 공무원들과 수당을 계산하는 서식이 같기 때문에 저희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간 외,... 

국고 보조 금액도 OECD 가입국 중 최하위로 알고 있습니다. RT: 소방관 한달 위험수당 5만원,위험직무 아닌...

 이명박 정부 들어 KBS, MBC 제작진 징계와 문제있는 발령 by 언론연대 

저 홧김에 남친한테 헤어지자고 했어요. 분명 지금 집밖도 못나가고 방에 틀어박혀서 반성중 이겠죠? 다시 잡으면 못 이기는척 만날 생각이예요.

적의 친구도 적. 적과 아는 사람도 적. 내 편에 서지 않는 모든 이들이 적.. vs. 적과 아는 사람도 내 편, 적의 친구도 내 편, 분명하게 적 편에 서지 않으면 내 편.. 이들 중 승리는 누구한테 돌아갈까?

가난한 집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돈을 아껴쓰구 저축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돈은 무서운 것이라 가르친다. 그러나 부자집 부모는 빚을 내서 투자하고 사업하는 것을 가르친다. 돈에 대해서 공부하고 잘 다뤄야 하는것이라고 가르친다.

"팩트에 충실해야 진보가 산다." 한미 FTA 반대론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

운전기사가 지시도 없이 그런 짓을 했겠느냐는 초등학교 3학년만 되도 할 법한 의심들은 경찰 발표 너머의 것이므로 아예 취급도 안하고, 한나라당은 하다하다 별나라 짓까지 한다거나 그간 북한이 했던 짓은 다 뭐냐 이런 것까진생각할 대가리 수준이 못된다.

이럴 거면 살인사건 보도할 때도 피해자와 살인자 사이에 '목숨을 둔 공방', 사망을 둘러싼 '논란'이라고 해줘야 니들이 조아하는 균형과 형평이 맞지 않겠니. 당연히, 최구식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없고, 나경원은 꺼내기도 힘든 이름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쩔수 없이 보는데 최구식 똘마니 디도스 공격 관련 K.M.S의 뉴스를 보고 있노라니 개짜증이 밀려온다. 파장이 있다도 아니고 한결 같이 '파장이 만만치 안을것 같다'랍신다. 프레임은 여지없이 '공방'이고, 스탠스는 '논란'에 걸쳤다

"모르는 일이다 - 기억나지 않는다 -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 권력형 불법행위자들이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검찰이 안 밝혀줄 거다 - 멍청한 국민은 곧 잊어버릴 거다 - 아예 없던 일이 될 거다) 이건 속으로 하는 말입니다.

김진숙, "1750명이 짤렸을 때, 아빠가 회사에서 짤리고 나니까 아들내미 학교에서 우유 급식을 하는데 우유 값 몇 천원 줄 돈이 없더래는 거에요. 짤리면 그렇게 됩니다. 애가 우유를 못 마셨는데, 한...

2500년전의 고전 詩經에 碩鼠(석서--큰 쥐)라는 시가 있는데 내용이 재밌군요.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

“배가 뒤집히는 건 아주 간단하다. 다들 오른쪽으로 몰리든, 다들 왼쪽으로 몰리든 한쪽으로만 몰리면 배는 뒤집어진다.”(박민정, <화요일의 동물원>)

모랄을 이야기하고싶지도 않고 신념 따위를 들먹이고싶은것도 아니다. 다만 상거래의 규칙은 무시할수없는거 아닌가. 돈이 벌고 싶으면 돈을 벌되 그일때문에 욕을 먹는건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욕 안먹으려고 발버둥치다가 돈이 안들어오는걸 감수하듯이.

나는 보수언론쪽에서 일하는 분들한테 개인적으로 나쁜감정가져본적도 없고 친한분들도 꽤 있다. 하지만 거기에 '지식인으로서 이름을 걸고' 돈을 받는건 다른일이다. 그렇게하지말라고할일도 아니지만, 그렇게하면 다른건 포기하는게 상도의 아닌가?

오래전 리영희 선생님께 받은 편지 한 대목 - 어떤 환경하에서나 유연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큰 인물이고 큰 일을 할 수 있어. 인간도 물체와 같아서, 압력이 일정 기간과 일정 무게를 넘으면 스프링이 彈力을 상실하게 되는 거야.

남의 생계가 이래야된다 저래야된다 감놔라배놔라 하는 건 참 쉽지. 같은 잣대를 본인에게 들이대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정치를 '적이냐, 동지냐'로만 해석하는 칼 슈미트적 주체들로 과잉되어 있어요. 내 편은 선이요, 남의 편은 악이요라는 마니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지배한달까. 종편과 김연아 논란만 봐도 그렇죠. 대안적 상상과 가치의 생성이 말끔히 살균된 세계.

종편의 정치성? 무시해도 됩니다. KBS,MBC 뉴스도 안 보는데... 미디어는 이미 쌍방형으로 진화했어요. 신문만큼이나 방송도 이미 올드 미디어죠. 포털사이트가 데스크의 편집권을 무력화했죠? 요즘은 포털 뉴스 편집도 SNS가 걸러줍니다.

경향신문이 "벤츠女검사" 대신 "벤츠검사"라고 표현을 바꿨다 이런 작은 노력이 사회를 진보케 하는 것이겠지.

사주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 발간중단. 조중동종편 개국. '괴담'프레임을 통한 보수기성매체의 뉴미디어 전면전. 나꼼수콘서트측의 황당한 특정언론사 취재금지령. 한국저널리즘의 내적/외적 만성적 위기들의 곪은 자국들이 동시다발 터질락말락.

 s는 노력한 게 보이더군요. 연합도 주최 측이 밝힌 취재거부대상이었는데 기사는 다 나왔고요. 꼼수팀이 새노조강연 올 정도로 친분도 있고 저흰 파노라마도 있는데 여러모로 좀 그렇네요. 

  안그래도 오늘 박시장 취임 한달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나중에보니 주요발언을 트윗으로 생중계했더라구요. 앞에 있는 기자들이 발언을 왜곡할까 대비했나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미디어'는 필요없다는 사람이 피부로 느껴져요.

 다룰 거야 많잖아요ㅎ 종로서장 자작극 논란이나 물대포 논란도 다루지 않았고요. 3년전 집회취재할 때만해도 장비사용규칙 위반이나 버스장벽도 다 지적했는데 지금은 위헌판결 이후인데도 한마디 안나오고요.

공부 열심히 하셔서 좋은대학 나온 후 언론사에 들어가신 기자님들이 왜 그렇게 취재를 못 하시나요. 안 하시나요? 데스크가 커트시키나요? 부끄럽지도 않나요?

소유와 편집이 완전히 분리된 영국의 진보 정론지 <가디언>은 기자들이 편집국장 후보를 복수로 추천, 재단은 이들 가운데 한명을 지명할 뿐. 신임 편집국장이 재단에 인사하러 가면 봉투를 하나 준다. 봉투를 열면 짧은 편지. "하던대로 하시오." 끝~

조선,위기의 삼각 파도. 1.장자연사건 패소(말 안듣는 권력) 2.희망이 없어보이는 종편(언론으로 성공해 언론으로 망하는) 3.SNS로 의제 설정 능력을 상실. .......

트윗에선 한나라 조중동 수꼴 vs 나꼼수 진보 FTA결사반대, 이 양극만 보이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날엔 뭔가 굉장히 격앙되거나 아예 입꽉 다물고 있고. 소위 '부동층'은 다들 어디 있는걸까. 움직이지않는다고 생각이 없는건 아닐텐데.

그간 "먹고 사는 일=성장, 분배=복지"라고 인식했는데 그게 아니라 "혼자 먹고 사는 일=성장, 함께 먹고 사는 일=복지"라고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복지가 먹고 사는 일을 등한시 하는 그저 나눠 먹기에 바쁜 인기영합주의가 아니니까.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작년 MBC가 45일간의 파업을 끝내면서 홍보국장이 한 말이다"우리는 내부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이길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결국 이제 본격적인 투쟁일뿐이다. 4년동안의 투쟁을 마무리하는 투쟁. 이제 1년 남았다

어제 언론노조에서 트윗을 통해 발표한 '호소문'의 모든 답글을 아침 내내 읽으면서 지난 4년을 생각했다. 3번의 파업, 7월22일 날치기, 위원장의 헌재 앞 만배, 단식, YTN 6명 해고, MBC 45일 파업, KBS 30여일 파업…

종편으로 옮긴 후배가 트위터에서 뭇매를 맞는 걸 보며 심경이 복잡해진다. 우리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가치 선택의 자유는 크지 않다. 자원이 보수쪽에 극편향돼 있는 한국의 언론시장 환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로선 재단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법공직위의 최판사 징계시도가 권고로 끝난 것에는, 다른 판사들의 공개저항도 한 몫 했을겁니다. 신영철 파동때의 전국판사회의가 재연될까 걱정했겠죠/ 혼자서는 정의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판사라도요. 모여야합니다. 검사도, 기자 피디도, 시민도.

글쓰는 제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여행같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고, 책을 쓰는 것은 제 자신 속으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책 써서 나오는 알량한 인세는 건축을 보러가는 진짜 여행 경비가 되지요...

모든 판사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다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예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터. 그 생각을 머리 속에 숨기고 있으면 공정한 판결이 되고 솔직히 표현하면 불공정한 판결우려가 있다는게 말이되나

왜 신경숙 작가님은 트위터를 안하세요? 라는 독자 질문에. "강 이편과 저편에서 서로 반짝이는 존재로 남아있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작가와 독자 사이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강이 흘러줘야 씻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씻어버릴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앞 한미FTA비준무효 정당연설회. 시민들로부터 취재거부당한 중앙일보종편 jTBC기자들이 광화문역 입구로 옮겨 퇴근길 시민들을 붙들고 인터뷰를 딴다. 봉하마을 논두렁에서 리포트했다던 KBS가 떠오른다.

Why Can't Newspapers Make Money Online? | ClickZ 신문은 왜 온라인에서 돈을 못 벌까. 참 예민한 주제죠. 이 분의 결론은 "터무니 없는 가격정책과 대응 속도의 한계" 

 철도파업 때문에 서울대 면접 못봤다는 가난한 전교 1등의 안타까운 사연(중앙일보 1면)..언론중재위 '오보' 판정에도 소송까지 가더니 2년만에 기사 삭제..인간어뢰 버금가는 희대의 특종은 결국 공갈이었다.

꽃다운 시절, 낯선 외국에서 공포스런 성폭력에 시달렸던 10대소녀들은 스스로 기꺼이 역사의 증거가 되어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고통스런 얘기들을 들려줍니다. 이제 여덟 분의 할머니 밖에 남지 않은 그곳. 이런 할머니들을 외면하는 국가가 밉습니다.

몇년전 촛불때 모일보 기자가 엠네스티 조사관한테 '왜 시민들 폭력은 문제삼지 않고 경찰만 문제삼냐'했을때 '시민은 결국 처벌받지만 공권력이 저지르는 폭력은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 했었지. 공권력이 위임된 정당성을 잃으면 폭력만 남는다

 "병신"이라는 욕을 쓰지 말아달라는 주장은 그것이 장애인을 향해 하는 욕이라서가 아니라, 장애인을 부정적인 상태로 간주하고 그에 빗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지점에서 "등신"도 그 본질을 흐리는 용어에 불과하다는 거죠.

고3학생 어머니 살해사건에 대한 한겨레 24시팀의 이틀간 취재메모를 묶었더니, A4 68쪽이다. 주검이 있던 안방 문이 열리기전 이 학생이 아버지에게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버리지 않을거지?"라고 했다는 대목을 읽다 먹먹해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법은 성실하고 정의는 챙길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의는 항상 좀 늦게, 지친 모습으로 때로는 좀 누추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는 제발 그만 해야하지 싶다. 늘 이렇게 우우~~ 하다가 지나가면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반성도 없고 다음에 또 똑같고. 우리 시민들 한발짝씩 전진하는거 맞나요? 옆걸음이거나 왔다갔다 하는건 아니구요?

무슨 일이 터지면 멘션으로 뭐라뭐라 의견주시는 분 많은데, 그게 아닌걸로 밝혀지면 멘션으로 사과하시는 분 아직 못봤다. (멘션 아니고 그냥 트윗으로도) 특히 타진요 경우가 그렇고. 그래서 트윗에선 팩트를 구하지 않는다.

광산 채굴장의 카나리아, 잠수함의 토끼, 세상의 시인은 비슷하죠. 그들은 누구보다도 그곳의 위험지수를 먼저 감지하죠. 지금 우리 사회의 위험지수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사람은?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이 그 중 한 사람이 아닐까요.

한 남자가 돌을 들어 차 유리를 깨뜨린다. 그리고 카피. "우리는 이 남자가 차 유리를 깨뜨렷다고만 보도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구한다. 1988년에 창간한 한겨례신문의 TV 광고다.

참고하세요. RT : [서양철학사], 렘프레히트, 을유문화사 철학사부터 읽으시고, 개론서, 그리고 사상가를 읽으시면 됩니다 RT  철학전공하신분 계시면, 서양철학 입문서 추천해주세요. 

지는 그날 YTN에서 짤린 노종면 기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네다. 주류매체 직업 기자/피디들을 통한 "대의민주주의" 시대는 끝났다. 트윗터와 소셜넷을 통한 인/민 잡인들의 집합적 "직접민주주의" 시대가 새로 개통되었다. 상황이 아닌 패러다임 문제다.

지금 트윗이나 소셜넷의 의미, 역할, 비중은, 치안단속의 특이한 상황이 빚어낸, 특별하고 예외적인 정세적 효과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래서, 정말 정권이 바뀌고, 주류매체가 복원되면, 평이한 사적 공간으로 되돌아갈까요? 정말 미디어생태가 그렇게 될까요?

FTA 반대한다고 몸에 불도 질렀잖아.. 뭘 어떻게 해야 침묵하지 않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갖는 시민이 될 수 있는건데?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런 순간은 소위 성공한 나날이 아니다. 오히려 실의와 절망에서 벗어나 인생에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용솟음치고, 미래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충만한 때다." 구스타브 플로베르

어제 심한 성적 강요에 어머니 살해하고 8개월 숨겼던 우둥생 이야기 마저 하자면. 뉴스에서 "태연히 수능까지 보러 갔습니다"라고. 태연했는지 안했는지 그걸 댁이 어찌 알아요. 그 속을 누가 아냐고. 기가 막혀서.

외국 신문사 웹사이트에 가보면 이제 블로그의 레이아웃과 거의 유사함을 느낀다. 소통을 위해 설치한 수많은 SNS공유버튼, 위젯, 태그클라우드 등등. SNS를 긍정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짓으로 보인다. 우리 보수언론에겐 빨갱이에 불과한 SNS를.

RT : 오늘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정기준은 온 백성이 글자를 아는 세상을 상상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오늘날의 권력 집단은 온 국민이 미디어를 갖게 된 세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국 사회는 과연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일까요? 국익을 위해 해야한다는 논리나 국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것 뿐입니다. 결국 누구도 그 국익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It's not whether you win or lose. But whether you've changed how the game is played.

어떤 분이 총파업을 해야하는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전국민의 총파업은 모르겠지만 언론인들은 정말 총파업해라. 지금 언론이란 매체를 통해 나오는 기사들은 99.9%가 쓰레기다. 저런 쓰레기 같은 걸 자기 이름 걸고 내보내면서 자괴감이 없다면 기자도 아니지

대규모 FTA 반대시위가 열릴 거라는 오는 토요일에 사건팀 근무당번...설마 중계차하라고 하진 않겠지. 2009년 6월 이후로 사람많은 곳, 특히 서울 도심 중계차는 부담스럽다. 사방에서 야유와 달걀이 날라올 것 같다.

내가 알고 싶은건 FTA가 우리의 삶, 농민, 자영업자, 월급쟁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인데 소위 언론이라는 곳에서는 체리와 삼겹살, 자몽에 대해 얘기한다. 생산자나 노동자로서의 삶은 버려지고 소비자로서의 생활만 남았다.

사실 내 타임라인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정말 걱정스러운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이 소식, 들었을까.

한국 민주주의는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 대한민국 또 망해보지 뭐. 저 의원들 중 단 한 명도 민주적인 절차로 의원이 되지 않은 자는 없다. RT : [YTN-강기정] 한나라당 의원들 전원 착석 - 180여명, 정족수 넘겨

나는 요즘 내 꿈이 아무렇게나 팔리고 짓밟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인이라는 것들은 국민의 삶을 아무렇게나 팔고 짓밟으려고 한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과 미래가 있는지, 그들이 알 바 아닌 거다.

 누구나 깊은 눈으로 '세상을' 사색하면 나오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에 말로 글로 인터넷으로 세상에 전달되지요. 시인 한명, 노동자 한명 잡아 들이는 것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때는 모두가 핍박받던 때였다. 핍박에 못이겨 한 일을 비난해선 안 된다." 해방 뒤 친일행위로 비난받던 사람들의 공통된 변명 중 하나입니다. 후일, 이 땅 다수 언론인들도 지금을 자기들이 '핍박받았던 시대'로 기억하려 들지도....

"빈민촌 거주자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볼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그들보다 잘사는 우리들로서는 그들이 미소를 잃지 않는다는 사실, 그들은 미소지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이멜다 마르코스

언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면,사회적인 불만이 SNS가 아니라 언론 기사를 중심으로해서 담론으로 주조되고, SNS 는 이를 부차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겠지. 딸랑이짓도 모자라서 SNS 헐뜯기라니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인간들이다.

민주노총 김진숙지도위원은 이승만토론을 보고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하고, 내가 갑장(동갑)이라고 반갑다고 하는데 나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가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온 고통스런 길에 비해 내가 살아온 길이 너무 비단길이라 정말 정말 미안했다.

안철수가 표상하는 자유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면 당분간 지연시킬 수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자유주의적 가치에 실망한 많은 이들이 선택할 정치적 입장은 한국 상황에서 파시즘일 확률이 높습니다. 진보가 자유주의와 다른 가치를 제시해야하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뭐라고 보도하나 들어보자 ... 라며 방송과 신문을 열어보는 시대라면, 정할게 없을때 방송신문 뉴스를 들추는 시대라면 기자란 과연 무엇일까?

애초에 기대같은 건 몰랐다. 그러니 '확신같은 믿음'이란 개념은 자리잡을 공간이 없었다. 희망은 그래서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한 구석에 막연한 꿈같은 건 있다. 현실이 현실이라 불리지 않을 때를 위한 끝없는 균열을 꿈꾸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살려주세요. RT : 어제 와락의 해고노동자 집단상담 중에..> 쌍용차 정문 앞에서 분신자살하는 똑같은 꿈을 며칠째 계속 꾼다. 잠에서 깨면 ‘이대로 정문 앞으로 확 달려가 버릴까..’ 하는 맘이 든다. 무섭다.. 이런 내 삶이.....

즉 한국인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 안다 싶으면 '강의'하고, 모른다 싶으면 '공부'합니다. 이것은 꼰대-피꼰대의 구조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건 당장 시험에 안 나오지만, 외우세요.

김미화는 마이클잭슨의 노래 ‘You are not alone'을 “언론이 아니다”로 재치있게 표현하며 “내 친구 마이클 잭슨도 언론을 향해서 그런 노래를 했다”면서 “제대로 서야 한다. 언론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언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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