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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2011년 어느 여름날 오후

# 선착순 달리기하듯 연달아 게시판으로 뛰어드는 공고들. 두근두근  가슴이 울리기보다 '지겹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호르몬을 탓하고 싶은데, 그렇지 않다는 걸 항상 안다. 알아서 더 호르몬을 탓하고 싶다.

먹구름 끼고, 추적추적 비오는 날씨도 지겹다. 초록이 발하고, 태양 아래 모든 색이 선명한 계절이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어디로 간 걸까. 내가 기억하는 마음도 꼬깃꼬깃 접어져버린 걸까.
 
# 김애란이 좋았다. 편의점에서 삼다수와 햇반을 사고, 어둠을 밝히는 모니터빛 아래 드라마를 다운받고, 골목마다 숨겨진 이야기처럼, 장맛비에 눅눅해진 방 한켠에 떨어져 있는 포스트잇처럼, 지하철에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사는 나와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서였다. 이제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내는 그녀에게 또 한 번 말하고 싶다. 당신이 좋다고. 책이 얇아질수록 조바심이 날만큼, 동공으로 들어오는 활자 하나하나에 두근거릴만큼 설레고, 시리고, 먹먹한 책이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문장이, 이야기가 샘나는 만큼 비록 허구일지라도 누군가의 고통, 혹은 불행 앞에서 짐짓 안도하는 내가  있다. 부끄럽기보다 모래와 바람과 먼지, 풀에게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고 묻던 김수영 시의 한 구절 같은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 곧 여행. 부질없이 늘어가는 삶의 무게마냥 내려앉은 카메라 위 먼지를 털고 오랜만에 길을 나선다. 상황이 여의치않아 계획만큼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그래도 모처럼 설레고 싶다. 찰칵 소리에, 척 하고 필름이 감길 때마다 나는 쇳소리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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