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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20대가 블로그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


지난주 토요일 새사연에서 주최한 '쾌도난담 2010 한국경제' 토론회에 다녀왔다. 정태인 교수와 김병권 새사연 원장의 특강을 시작으로 6명의 블로거가 각자 발제를 하고 트위터와 플로어의 질문을 받아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 토론회였다. 사실 발제 내용들은, 관심을 갖고 신문이나 방송을 꾸준히 봤다면 알 만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 일자리뿐만 아니라 등록금에 주거권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20대들은 삶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 앱스토어가 상징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 등등. 

오히려 신선했던 몇 가지 중 하나는 트위터로 질의응답을 진행한 점이었다. MBC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게시판이나 전화로 실시간 질문을 받긴 하지만, 트위터로 이 같은 시도를 한 것은 이번 토론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최근 내가 트위터에 빠진 영향도 있겠으나(;;), 포털이나 블로그가 아닌 트위터에 기반을 둔 움직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확실히 트위터는 매력적이다. 길고 정돈된 글을 써야 하는 블로그나 게시판에 비해 140자라는 짧은 글자수의 제약은 오히려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 정보의 획득 혹은 교환 또한 매우 간편하다. 물론 내가 팔로잉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메인 화면이 너무 어지러워진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신선함은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던 질문에 있었다. 발제 중 2개가 청년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고, 갈수록 실업이 심각해져가는 만큼 20대 이야기는 질의응답 시간 초반에도 계속 됐다. 그때 질문을 받아야 할 이정환님이 "정말 궁금하다"며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20대는 블로그를 많이 하지 않을까요?"

그 자리에서 나온 답은 두 가지였다. 첫째, 주입식 교육을 받은 20대들은 콘텐츠가 없어서 블로그를 하지 않는다. 둘째, 늘 시간에 쫓겨 살고 아이폰을 살 능력도 없는, 심리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20대들은 블로그를 할 수가 없다. 이 답변을 들으며 나도 한 번 생각해 봤다. 도대체 우리는 왜 블로그를 하지 않는가?

우선 저 두가지 답은 맞지만 틀린 답이다. 일단 블로그라는 건 굉장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물론 꾸준히 활동하는 블로그들을 가보면 공통된 특징이랄 수 있는게, 어떤 '특별한 주제'가 그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 문제면 시사 문제, 아니면 경제나 문학, 여행, 맛집 등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글을 쓰고, 생각을 다듬는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꽤 오래(설치형 블로그라고 할 수 있는 개인홈페이지까지 치면 근 10년?) 블로그를 운영해 오며 나 또한 '주제의 필요성'에는 심히 공감했다. 그것이 없을 때는 꾸준히 글을 쓰기 힘들다는 생각도 여러차례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블로그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여기선 내가 왕이다. 속칭 '파워 블로거'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꿈틀되지 않는다면 '주제'에 구애받거나 '방문자 수'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물론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쓰면 된다. 블로그 운영에서 필요한 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면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콘텐츠'가 없어서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핑계다. 단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적을 뿐이고, 냉정히 말해 게으를 뿐이다. 물론 교육 탓이 있긴 하다. 근데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우리의 생각이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고,보고, 쓰고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게 만드는 데 있다. 블로그의 콘텐츠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에서 무언가 읽고 보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게 아닐까?

또 다른 이유로 지적된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는 말도 한 번 보자. 어느 정도 맞다. 근데 아이폰이 없어서 인터넷이나 트위터를 못한다고 말하는 건 핑계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부터 20대는 인터넷을 해 왔다. 스마트폰은 단지 인터넷을 더 쉽게 사용하도록 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이 '블로그를 하지 못하는' 절대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날 계속 토론회를 방해하던 아주머니(;;)가 "왜요, 나는 컴퓨터로 인터넷하는데~"라고 말했을 때, 모두들 웃었지만 사실 그건 정답이었다.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 블로그를 못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은 취업 관련 정보를 찾고 토익 문제를 다운받기 위해서라고. 근데 우리는 안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이렇게 보내지 않는다는 걸. 인터넷을 하는 우리는 포털에서 웹툰과 연예뉴스도 봐야하고, 디씨갤이나 게시판을 확인해야하고 때때로 미드를 다운받거나 게임을 해야 한다. 20대가 블로그를 안 하는 까닭은 단지 그것이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 홈피와 블로그의 차이점은, 블로그에선 한결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 '괜찮다'는 건데 그 부분에 있어서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 점에선 (이런 식으로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20대와 그 윗세대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대개 20대들은 개인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리고 상당히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적이지 않기에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뭐 인생과 사랑에 대한 구구절절한 싸이용 글들은 다르겠지만. 또 인터넷을 '놀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그것을 '소통(여기서 말하는 소통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성격의 소통에 가깝다)'의 수단으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선 PC통신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구현된 웹세상이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정치,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윗세대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혁신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새로운 놀이 도구'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20대는 블로그를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부 20대들은 블로그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20대들은,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자면, 재미있지 않고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를 안 하는 거다.

누구나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필요 없으면 안 한다. 혹자는 너무 단순화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20대인 내가 주변 사람들이나 내 자신을 살펴 보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를 감성이 메마르고 얄팍한 사유를 가진 존재로 만드는 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를 경쟁에 내몰고 돈와 출세를 좇게 만드는 사회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를 점점 더 개인주의적고, 세상일엔 나몰라라 하게 만드는 교육과 사회 모두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안에 있다. 그냥 솔직해지자. 귀찮고, 재미없고, 그닥 중요한 것 같지 않고, 할 필요를 못 느끼니까 안 한다고.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그러니 제발 남 탓은 이제 그만~

* 뱀발

그리고, 윗세대들(적어도 토론회 참석자나 트위터를 하는)이 생각하는 블로깅의 의미, 목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그분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긴 그런 블로그만 블로깅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솔직히 네이버나 네이트, 이글루스 등등에서 활동하는 20대 블로그들은 많다. 단지 관심사가 다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이런 논의가 나올 때는 '어떤 블로그'를 많이 안 한다고 여기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