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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선정적인 자살보도, '언론윤리강령'은 읽어 보고 쓰나

'정남규 사건'을 계기로 짚어 보는 한국 언론의 자살 보도[2009.11.26 오마이뉴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살 국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인구 10만 명 당 26명에 이르는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 사회적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살 문제지만, 유독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있다. 바로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기관이다. 2005년 이후 전국 47개 교정기관에서 자살을 시도한 수형자는 422명으로, 이 가운데 72명이 숨졌다. 그리고 며칠 전, 한 사람의 사망자가 늘어났다.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수감 중이던 서울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사형을 선고받은 연쇄살인범의 자살, 그것도 사형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한 달 앞둔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23일, 각 신문과 방송은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배우 최진실, 장자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자살'을 보도하는 한국언론의 태도엔 여전히 속보 경쟁, 선정성 강조가 특징인 '경마 저널리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2004년 10월 '자살관련 언론보도의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자살 보도의 언어적 표현과 암시하는 태도가 자살의 전염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자살 사건의 특성도 모방자살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자살 방법의 구체적 묘사는 절대 금하고 자살의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준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특히 '어떤 방법으로 자살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지난해 배우 최진실씨가 자살했을 당시 언론은 그가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를 상세히 보도했다. 심지어 한 일간지는 최씨가 사용한 압박붕대의 길이는 어떻고, 가격은 얼마이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등을 자세히 다룬 기사를 온라인에 게재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자살 보도와 관련해 여러 번 몸살을 겪었음에도, 언론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이번 정씨의 자살 보도 역시 과거와 다를 바 없었다. 

<조선일보>는 "정이 자살 도구로 쓴 것은 구치소에서 나눠준 폭 58㎝, 길이 75㎝ 크기의 재활용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지"였고 "이 비닐봉지를 꼬아서 약 1m 길이의 새끼줄처럼 만들었다"는 수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심지어 "대부분 속옷이나 수건 등을 자살도구로 썼지만, 모서리를 날카롭게 벼린 숟가락이나 사용하던 안경을 깨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쓴 경우도 있었다"는 부연설명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 나머지 주요 일간지들은 <조선>보다는 덜 구체적이었으나 '비닐 쓰레기 봉투를 꼬아 만든 1m 길이의 끈을 이용해 구치소 독방 안 105cm 높이의 TV 받침대에 목을 맸다"고 자살 수법과 환경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방송 보도 역시 큰 차이 없었다. MBC, KBS, SBS, YTN 모두 자사 뉴스에서 정 씨가 무엇을 이용해 어떻게 사망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했다. '연쇄 살인범 정남규, 구치소서 자살'이 대부분이었던 기사 제목은 상대적으로 선정성이 덜했으나 '목 맬 끈 1m 만들 때 구치소 뭐했나'는 제목의 <동아> 기사는, '재소자 관리'란 기사 내용보다 정씨의 자살 수법에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자살 원인을 단정적으로 명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점 또한 언론이 자살 보도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번 사건의 경우 사형제 관련 메모가 담긴 정 씨의 노트가 발견되는 등 몇 가지 정황이 포착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사형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로 자살 원인을 단정 짓는 모습이다. 

<"사형폐지 없다" 메모…죽음의 공포 못 이긴 듯(서울)>, <13명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형불안감'에 자살(SBS)>, <'사형불안' 연쇄살인범 정남규 자살(경향)> 등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상당수 언론이 그의 죽음을 '사형제'와 연결해 다루고 있다. 수형자 관리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도 있지만, 이 또한 CCTV 설치 확대나 생필품을 자살에 쓰는 문제 등 '관리상의 허술함'에만 주목할 뿐, 수형자의 심리적 불안감 해소 등 근본 해결책까진 짚지 못하고 있다.

 

11월 23일자 10면 <한겨레>는 이번 사건을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다뤄 눈길을 끌었다. 제목 외에는 '자살'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으며 그 수법과 도구에 대한 구체적 묘사도 없었다. ⓒ <한겨레>

계속된 '자살보도의 악순환' 속에서 그나마 차분히 보도한 곳이 <한겨레>였다. 다른 신문들에 비해 기사 크기가 작았을 뿐 아니라 '목을 맸다'는 내용 외에는 구체적인 자살 수법을 묘사하지 않았다. 또 제목 외에는 '자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목을 맨 것을 교도관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텔레비전 받침대에 목을 맸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등으로 표현하는 정도였다.

선정적 자살보도가 모방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있었고, 작년 배우 안재환씨의 자살 수법을 묘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그 폐해도 여러 번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 보도에 관해 "흥미 위주 보도를 지양하고, 자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피해야 하며 유명인사의 경우 정신보건문제에 대해 언급할 것"이란 내용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고, 영국 공영방송 BBC도 제작 가이드라인에서 "자살에 대한 사실적 보도는 모방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가장 단순하게 보도하고,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차분하고 신중한 보도를 강조하고 있다.

흔히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한다. 모든 이들의 공동소유나 마찬가지이기에, 언론은 치우침 없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전하는 방식은 진지하고 차분해야 한다. '자살'은 슬프지만 진실인,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슬프고 무거운 사건을 선정적으로 접근할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진중하게 다루는 '책임'이 강조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