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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스스로 일어서는 꿈'을 배우는 곳

정신지체학생을 위한 충북 제천 청암학교[2009.11.21 오마이뉴스]

 구수한 커피향이 풍겨 나오는 아담한 '세하 카페.'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오면서 친구들과 깔깔댄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그 웃음 사이로 들리는 씩씩한 목소리의 주인공 정우(15세)는 3개월 동안 이곳에서 실습 중이다. 쿠키와 연꽃잎차가 놓인 진열대를 정리하고, 손님을 접대하면서 과일 깎기와 음료 만들기 등을 배우는 것이 정우의 일이다. 이곳은 청암학교 학생들이 종업원이 돼 직업 교육을 받는 교내 카페다.

사회에서 제 몫 하게끔 직업 교육에 힘써

 올해로 개교 17년째 된 청암학교는 충북 제천시 흑석동에 있다. 전교생 234명에 유치원, 초·중·고등부에 전공과까지 32개 학급이 있는 이곳은 충북에서 제일 큰 특수학교다. 또 도내 두 개뿐인 정신지체학생을 위한 학교 중 하나다. 2009년 현재 전국 95개 정신지체학생 대상 학교 중 절반가량이 서울, 경기, 부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차로 한 시간 걸리는 충주에서 매일 통학하는 학생도 50명이다. 집이 멀거나 장애정도가 큰 100여명은 학교 옆 생활관 '이하의 집'과 '세하의 집'에서 생활한다. 

 지난 1992년 개교 당시에는 유치부 2학급과 초등부 6학급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하지만 나이가 찼을 때 들어갈 만한 중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중등부가 생겼고, 뒤이어 고등부와 직업 교육을 위한 전공과가 신설된 게 오늘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가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몸집이 커져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다. 학생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는 데 학교가 중점을 두고 있는 이유다.

▲ 고등부 학생들이 직업 교육 시간에 만든 압화 작품 ⓒ 박소희



 직업 교육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청암학교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직업 교육을 받는다. 고등학생이 되면 포장조립, 목공 등 11개 직업부서에서 본격적인 실습 훈련을 받는다. 고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전공과는 더 전문화된 교육을 받는 곳이다. 단계별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은 김치공장, 대형마트 등에 현장 실습을 하며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배운다. 포장조립 시간에 배운 박스 포장법이 현장에서 다를 수 있어서다. 

 실적도 꽤 좋은 편이다. 전공과는 지난 2년 간 졸업생 20명 모두가 세차장, 뷔페업체 등에 취업했다.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취업률이 44%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뛰어난 성적이다. 고등부는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지만, 매년 5~6명은 꾸준히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마다 맞춤형 교육

 청암학교의 또 다른 특징은 개별화 교육이다. 직업 교육은 물론 모든 교과가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진행된다. 일반학교와 달리 특수학교는 교과서는 없고 교육과정만 있다. 교육과정도 시수와 과목만 정해져 있을 뿐이어서 활동 위주의 수업 내용을 만드는 일은 선생님들 몫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특성이 다양하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찾은 답이 바로 개별화 교육이다. 선생님들은 매 수업마다 개별 학생의 장애정도에 맞는 수업계획을 세운 뒤 이를 실행한다. "한 반에 3살부터 11살까지 있는 것과 마찬가지"란 교사 송왕돈(39세) 씨의 말처럼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송씨는 "하지만 한 학급당 평균 7.5명인 학생 수도 버거운 규모"라며 "개별화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학급 크기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이곳은 학비가 무료라 인기가 좋은 편인데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정원 내에선 지원학생의 입학을 무조건 허가해야 한다. 

 재단에서 쿠키 판매 등 여러 수익 사업을 하고, 교육청 지원도 잘 되는 편이지만 교사 1명 당 학생 수를 4명으로 규정한 현행 법 때문에 청암학교는 교사 수를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별 학교와 시‧도 중 무엇을 기준으로 교사 수를 세느냐에 따라 적정 교원 수가 달라요." 송 씨는 "결국 교육감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 점심식사를 하던 학생들이 카메라를 보고 웃는다 ⓒ 박소희


 

 아직까진 어려움이 많은 특수교육 현장이지만,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에너지원이다. 엄마에게 안기듯 선생님 품에 꼭 안겨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청암학교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예쁘다고 마냥 감싸 안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 적응'과 더불어 '자립'은 이곳의 중요한 교육 목표다. 청암학교 학생들은 축구, 농구, 크로마하프 연주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곳

 수호(18세)는 얼마 전 중국 후베이성에 다녀왔다. 지적 장애인 올림픽인 '2009 스페셜 올림픽 동아시아지역 대회'에 수호가 골키퍼를 맡고 있는 풋살(간이 축구)팀이 한국 대표로 출전했기 때문이다. "산둥 지역 대표도 이기고 광저우, 마카오팀도 이겼어요." 수호는 "패스 안하고 혼자 공 가져가는 친구들이 있어서" 팀워크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풋살을 하면서 친구도 생기고, 더 친해지는 것 같아 좋다"며 환하게 웃는다.

 학생회도 학생들의 자립심을 키우는 자치활동이다. 원래 임기가 1년인데 '애들이 또 뽑아줘서' 작년에 이어 다시 학생회장이 된 효진(18세)이는 "처음엔 긴장 많이 됐는데 이젠 두 번째라 잘하게 됐다"고 말한다. 긴장감은 덜었지만 책임감은 더해졌다. 효진이는 "학생회장을 두 번이나 해보니까 그냥 그런데 부담감은 있다"고 했다. "애들을 지켜야 하니까요… 모든 걸 내가 많이 책임져야 해요." 밝은 목소리인데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중하다.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시험도 안 보는 학교라 너무 좋다"고 수호와 효진이는 입을 모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취직이다. 그래서 효진이는 졸업 후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조리사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 나중에 조그마한 옛날 기와집을 개조해 한정식집을 차리는 게 효진이의 꿈이다. 수호는 전공과나 대학교를 나와 노인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취미로 도자기 공방도 차리고 싶어요." 수호가 "근데 어려울 것 같긴 하다"고 하자 옆에 있던 효진이가 팔로 쿡 찌르며 한 마디 한다. "내가 나중에 도와줄게." 

 미국의 야구선수 짐 애보트는 "꿈이 있으면 된다, 나는 한 손이 없다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른손이 없는 채 태어났지만 1987년, 그해 최고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번상'을 받았으며 이듬해 열린 서울 올림픽 때 비장애인들과 겨뤄 금메달을 땄다. 청암학교는 학생들이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 제 힘으로 살아가길 꿈꾼다. 효진이와 수호처럼 청암학교 학생들도 저마다의 꿈을 꾼다. 꿈이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