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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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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참 많은 일요일이었다. 시험 중간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을 땐 하늘이 유난히 어두컴컴하다 싶었는데, 밖에 나와보니 바람결에 날아다니는 눈송이들로 시야가 빽빽하게 채워졌다.

시간이 참 잘 간다. 서울에 온 지 10년이 됐고, 연애를 한 시간은 4년을 꽉 채웠고, 멋모르고 첫 시험을 본 이후 3년이 지나갔다. 여의도에서 보낸 날들도 4계절을 한 바퀴 돌기 직전이다. 요즘에는 마냥 즐겁고 의지에 차 있다가도 어제를,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진다. 동사보다는, 명사나 형용사에 가까운 일상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과 어딘가 다른 곳에 머무는 마음의 시선 때문일까.

'눈부신 아침햇살, 기분 좋게 만드는 커피향 등등' 엄청 멋을 부린 말들로 취향 보여주는 척했던 때가 있다. 가끔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이제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하고. 열정이란 것이 활활 피어올랐다가도 금새 작은 불꽃으로 변하는 성향으로 나를 지키며 살아온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어, 점점 담담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하늘하늘거리는 쉬폰원피스를 입고 청순가련한 여성으로 거리를 누비거나, 햇살 좋은 카페에서 혼자 CF를 찍는 듯한 모습으로 커피향을 맡는 그런 상상을 가끔 할 때도 있긴 한데, 원체 무덤덤했던 사람인지라 그 무덤덤함의 강도=무관심의 강도가 날로 세지는 듯.

물론 약간의 허영과 가짜 낭만으로 꾸며졌던 시절을 지나면서 안팎으로 채워진 것들도 많지만. 자꾸 나란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밋밋함에 대해 의식한다. 그게 앞으로의 삶에 얼마만큼 긍정적인 요소를 줄 수 있을지 하는 호기심, 혹은 의심이 남아서일까.

가급적 긍정의 요소였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하다. 밋밋해도, 담담해도 오래 가는 사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 오랜 생각이고 습관이니까. 물론 가끔은 잭 블랙정도의 빵터짐은 없더라도 하하호호깔깔대는 재미도 있어야겠지. 삶의 결들이,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말, 표정들이 아무쪼록 더 다양해지길.

그리고 <걸리버여행기>도 빨리 했으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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