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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낭만이 필요한 나는 잡담을 늘어놓는다.

# 크게 음악을 틀고 책을 펼쳤다.
햇살이 좋았고, 모처렴 손에 잡은 소설책은 술술 읽혔다. 좀더 집중하고 싶어 음악을 껐다.

문학의 언어들은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아깝지 않은 것이 없었고 지금도 무엇 하나 놓쳐버리고 싶지 않아 두 눈을 크게 뜬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펜을 끼고, 옆에는 문장들을 담아 놓을 다이어리를 두고 책을 읽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에 나오는 그 긴 대화와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에서 뽑아낸 고운 글귀들을 모아 보물처럼 들고 다녔던 그때. 문학 소녀로 살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문학은 자꾸 내게서 도망가는 듯 싶다. 아니 '공부'란 핑계로, 메마른 책들을 자꾸 접하다보니 내가 도망갔나보다.

그래서일까. 일상이 무겁게 느껴지고 낭만이 필요한 나는 자꾸 문학의 숲을 거닐고 싶어진다.
현실은 여전히 메마르지만.

# 나는 크림빵을 싫어 한다. 한창 성당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 간혹 빵과 음료수를 간식으로 받을 때가 있었다. 소보루빵이나 단팥빵은 괜찮지만, 길쭉한 마들렌같은(하지만 그처럼 통통하지 않은) 크림빵이 나오는 날이면 참 곤란했다. 그렇다고 다른 빵으로 바꿔달라고 조를 성격도 못 되고,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법이 '크림 짜내기'였다. 포장 일부만 벗긴 다음 아랫쪽부터 빵을 꾹꾹 누르면 하얀 크림이 나온다. 굉장히 보기 안 좋은; 상태가 된 포장지에서 빵만 꺼내서 먹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크림빵을 먹을 때면 늘 그랬다. (케익을 좋아하지만 생크림 케익을 먹을 때도 가급적 크림은 발라내고 먹는다.)

그렇게 싫어하는 크림빵이 문득 먹고 싶어진 금요일 저녁이었다. 동네 제과점에 들러 평소 즐겨 찾는 '맨빵'과 함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크림빵을 먹다 잠든 시각이 대략 8시 반. 한 시간 뒤 걸려온 전화에 비몽사몽간 대답하다가 또 잠들었고, 11시쯤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며 내내 몸을 떠는 휴대전화를 잠재운 뒤 또 눈을 감았다. 한번 더 잠에서 깬 건 1시 반.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갔고, 또 잤다. 잠, 잠, 잠의 연속이었다. 좀 살 것 같았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가끔 크림빵이 먹고 싶은것, 첫 인상이 별로다 싶었던 사람 역시 호감으로 바뀔 때가 있다. 밥을 오래 씹다보면 아밀라아제 효과 덕분에 포도당의 단맛이 입안에 맴도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맨빵을 좋아한다. 그러나 맨빵이 지겨울 때도 있다. 맨빵은 '착한 사람'이랑 비슷하다. '착한 사람'들은 별 특징없다. 동시에 별 거부감도 없게 하는 사람들이다. 예전엔 그런 인간형들이 좋았고, 가급적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 지금은, 달라진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착한 관계'를 원하지만 스스로 그 탈을 오랫동안 쓰고 살아온지라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고민고민하다 손에 잡는 건 맨빵인 것처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내 지인들은 '잔잔한 사람'들인 것처럼.

# 하지만 출출한 내가 먹고 있는 건 크림이 든 후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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