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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떡해"


수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각자의 경험의 영역에서 편하게 살기를 선택하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의 상상으로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비명 소리를 모른척 하거나 감옥 속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들은 직접 느끼지 못하는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닫을 수 있다. 그들은 알기를 거부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수 있지만, 그들이 나보다 악몽을 덜 꾸는 것 같지는 않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택하는 자들은 일종의 정신적 광장공포증으로 시달리고, 그것과 수반되는 고통에 시달린다. 의도적으로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는 자들은 더 많은 괴물을 본다고 생각한다. 더 큰 두려움 속에서 산다.

 

                                                                           -- J.K. 롤링, 2008 하버드 대학교 연사


And many prefer not to exercise their imaginations at all. They choose to remain comfortably within the bounds of their own experience, never troubling to wonder how it would feel to have been born other than they are. They can refuse to hear screams or to peer inside cages; they can close their minds and hearts to any suffering that does not touch them personally; they can refuse to know.

I might be tempted to envy people who can live that way, except that I do not think they have any fewer nightmares than I do. Choosing to live in narrow spaces leads to a form of mental agoraphobia, and that brings its own terrors. I think the wilfully unimaginative see more monsters. They are often more afraid.



# 사시 보는 친구하고 야식하러 오랜만에 고대에 갔다.
지하철로 내려가려는 중, 메가스터디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버스 안의 학생들은 학교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 명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을까. “고대생이네.”
어떤 마음으로 생각했을까.

그리고 버스는 사라졌다.


10년 전, 나도 입시생이었다.
2000년 6월 5일 방콕국제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이틀 후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에 등록하고, 5개월 후 고대(와 연대와 동국대)에 합격했다.

버스에 탄 그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까지 하면서 공부해서 입학한 이 학교는 시작일 뿐이었다고.
예전에는 입시지옥을 통과하면 천국이 기다렸지만
이젠 지옥 다음에 또 지옥이고 또 지옥이, 지옥이 끝이 없다고.
천국이 아니었더라도, 그래도 먹고 살지는 않았는가.
이젠 그런 세상도 아니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던 세상에 이젠, 나쁜 것만 있다.

지는 자만 있는 게임.

# 이 게임, 플레이 하지 않겠다.
알아. 나 잘났어. 기득권 되면 돼. 유학 가면 돼. 이민 가면 돼.
그래. 나 잘 살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짓도 하지 않겠어.
나만 잘 살면 뭐해?
나만 “성공”하면 뭐해?
나만 인생을 바쳐서 1등하면 뭐하냐고.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떡해.
그리고, 내 인생은 어떡해.

못해. 
안 해.


난 싸울 테야.
게임을

바꿀 테야.

from   extraordinary empathy (http://ingemund.tistory.com/)


애초에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맘먹은 

첫번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난 뭘 해먹고 살까'였고 

두번째 이유는 '활동적이고 바쁜 일이 내 적성에 맞는다'였다.


솔직히 두 가지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나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판은 내 생각보다 훨씬 정치적이고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면에서 편향적이고 배타적이게 변할 수밖에 없다. 

평범하고 약하며 작은 것들에 민감해진다. 

강자 앞에서 더 당당하게 그들을 대신하고 싶다. 


자연스레 실력과 힘이 필요함을 느낀다.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한 힘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사람 혹은 지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 

여전히 한 발자국 물러서 있다. 


세상은, 내가 바꿀 수 없다. 

다만 나는 바뀔 것이라고 믿을 뿐이고 

그 믿음을 전하고 싶은 게 전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만큼이다. 


자만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떤 것이 의미있는 일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니까. 

성급히 판단해서 움직였다간 무모한 도전으로 끝날테고, 결국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테니까. 

실력과 힘이 필요하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바꾸고 싶은 일은 

결국 사람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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