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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몇 가지/조금만 더

모두들 말은 한다


언론계에 '혁신'이라는 단어가 유령처럼 떠돈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변곡점은 역시 SNS의 등장 같다. 웹 2.0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던 언론계에 소셜미디어는 생산과 유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방점이 찍힌 쪽은 유통이다. 언론사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계정 운영이 중요해졌고, 개별 기사들은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날개를 달았다. 신문 지면이나 뉴스 사이트의 '머릿기사'가 갖는 힘은 여전히 유효하나 SNS에서는 기사의 지위보다는 내용이 중요해졌고, 설령 지면 한 귀퉁이에 있던 기사라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떨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생산 면에서도 '인터랙티브 뉴스', '데이터 저널리즘' 같이 새로운 도구를 이용해 새롭에 보여주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언론계 종사자라면 '혁신'이라는 화두를 두고는 적어도 손톱만큼의 압박감을 갖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제는 '혁신'의 내용이다. 수년간 쏟아져나온 말과 말들에는 여러 모범사례가 존재했다. 버즈피드는 그 중에서도 늘 첫 손에 꼽히던 곳이다. 하지만 모범사례는 그야말로 모범사례일 뿐,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다. 버즈피드가 혁신 저널리즘의 선두에 섰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철저히 독자 중심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는 그들의 설명에 끄덕거리는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부터다. 모범사례는 그야말로 참고사항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실전 전략이다. 물론 한국 언론은 혁신과 생존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100점짜리 정답을 딱 떨어지게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요즘 돌아가는 판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달이 아닌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나는 '혁신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지겨워졌다. 이 여섯 글자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혁신'에 그쳐보였다. 그마저도 기술과 유통영역의 문제 같았다. 기술과 유통은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에서 혁신을 말하는 까닭은 결국 저널리즘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혁신 저널리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선 저널리즘이 보이지 않는다. 버즈피드나 허핑턴포스트처럼 '유통의 혁신'으로 개가를 올린 곳들이 자체 콘텐츠를 생산,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한몫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그들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잘 모르겠다. 뉴욕타임즈, 가디언은 질 높은 기사(Quality journalism)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스노우폴, 파이어스톰 같은 수작을 내놨지만 이 기획들은 일상적으로 나올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섣부른 관전평이겠지만, 이 흐름을 지켜보며 내가 주목한 수수께끼는 크게 두 가지다. 


그날 그날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로 어떻게, 얼마나 '혁신'을 이어갈까, 우리는 어떻게 '저널리즘'을 혁신할 것인가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영영 답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더라도, 나는 답답하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보고, 무엇을 찾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새로운 저널리즘'이라는 미명으로 이런 저런 새로운 사례와 도구를 찾아보기도 했으나 게을러진 핑계를 대자면 이렇다.  


요며칠새 읽은 기사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살짝 지겨워졌던 '혁신 저널리즘'이란 말을 곱씹어보게 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장의 글은 내가 가려워하던 지점을 정확하게 긁어줬다. 


미디어 산업에서 비즈니스의 위기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구독과 광고의 두 축이 모두 무너지고 있지만 애초에 신문은 구독으로 먹고살지 않은지 오래됐고, 광고 역시 광고 효과가 없게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본방 사수가 줄어들고 주문형 비디오가 확산하면서 공짜 방송에 광고 끼워팔기 수익모델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핵심은 독자들이 뉴스를 더 이상 열심히 보지 않고 당연히 상품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중략)... 부랴부랴 페이스북 좋아요를 늘리느라 아우성이고 카드뉴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인터랙티브 뉴스, 데이터 저널리즘, 증강현실까지,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혁신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매우 부족한 상태다. 


박상규 선배 인터뷰 기사도 비슷했다. 


한국 언론은 공정성은 굉장히 강조하지만 진실을 찾으라고는 하지 않아요. 논란이다, 의혹이다 라고 퉁치고 가죠. 그리고 전부 카드뉴스나 만들고 있어요. 아니 의혹이 있으면 진실을 취재하든가. 그리고 독자들은 그런 콘텐츠를 절대 외면하지 않아요.


저널리즘 혁신? 고담준론처럼 들리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화두를 붙잡지 않으면 '나는 왜 기자를 해야 할까, 언론은 정녕 사회에 필요할까'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은 힘을 잃는다. 그러면 우리는 떠돌 수밖에 없다. 기레기라는 말이 부끄럽다면서도 거기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기레기들로.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은 이미 암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기자이고 싶다. 이왕이면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 공허한 말보다는 실현가능한 '혁신'을 꿈꾸는 이유다. 모바일 퍼스트, 동영상 강화, SNS 유통 전략 등 오늘의 변화와 그 흐름이 중요하지만, 이 단어들이 놓치고 있는 '오늘'과 '내일'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보려는 나, 그리고 당신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