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고 남은 몇 가지/조금만 더

같이 생활하면 변화는 움튼다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382.html


갈 곳 없는 아이들, 또다시 거리로


예람청소년회복센터에는 절도, 폭행 가담, 인터넷 사기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녀 7명이 함께 살고 있다. 임 센터장은 법원이 지정한 아이들의 ‘신병인수위탁 보호위원’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24시간 아이들을 보살핀다. 노모와 둘이 살던 집은 7명의 소녀들로 북적인다. 최고참 민영(18·가명)이는 이곳에서 10개월을 지내는 동안 담배를 끊었고, 끊었던 학교는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배를 타는 아빠는 “없는 사람”이었지만, 요즘엔 종종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외로워서 밤이면 나가 놀았다”던 아이는 “여기 있으면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어 심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21>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좋은예산센터가 ‘세상을 바꾸는 1% 지렛대 예산’ 2호로 선정한 청소년회복센터는 비행청소년만을 위한 대안가정(그룹홈)이다. “엇나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라는 천종호 당시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현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아이디어로 2010년 11월 창원 샬롬청소년회복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경남과 부산, 경기에서 13곳이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법원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소년법의 취지(제1조)에 따라, 중범죄가 아닌 한 ‘보호처분’을 내려 소년범 대부분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판단능력이 흐린 청소년들에게는 구금이나 속박 대신 돌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법원의 ‘선처’는 현실에선 ‘방임’이다. <2013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 1만1910명 가운데 34%는 부모가 없거나 이혼·별거 등 가정 해체를 겪은 아이들이었다. 부모가 있더라도 가정불화나 폭력, 빈곤 등을 겪은 아이가 많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또다시 거리를 떠돌며 물건을 훔치거나 인터넷 사기에 나선다. 여자아이들은 성매매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범의 재범률이 성인의 3배에 이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 가운데 배가 고프거나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아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7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서에서 오는 길, 손을 잡던 아이


청소년회복센터는 10명을 넘지 않는 ‘가족 공동체’를 지향한다. 재판에서 ‘1호 처분’을 받은 아이는 보호자의 동의 아래, ‘신병인수위탁 보호위원’으로 지정된 센터장을 따라 그룹홈에 들어선다. 위탁 기간이 6개월이고, 6개월 연장이 가능해 최대 1년까지 머물 수 있다. 물론 흡연·음주·성매매 등 비정상적이고 무절제한 생활이 몸에 밴 아이들이 처음부터 말을 잘 들을 리 없다. 게임·인터넷 중독,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아이도 많다. 하지만 참고 기다리면, 변화는 아주 작고 미묘하게 시작된다.

부산 어울림청소년회복센터의 김선화 센터장은 얼마 전 또다시 사고를 친 아이의 ‘뒷수습’을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하루 종일 경찰서와 범죄 현장을 오가고 아이를 변호하느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갑자기 손이 따뜻해졌다. 옆에 앉았던 아이가 아무 말 없이 김 센터장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아준 것이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그간 수없이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동안 함께 있어준 사람이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마움이 전해지더군요.” 김 센터장은 그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치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거칠었던 아이는 그날 이후 김 센터장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예람센터의 2호 입소자였던 수진(18·가명)이는 지금 소년원에 있다. 임춘옥 센터장도 운영 ‘초보’였던 시절, 엄한 규율과 꾸중에 반발한 수진이가 칼을 들고 임 센터장을 위협한 것이다. 소년원에 간 뒤, 수진이는 매달 두세 번씩 임 센터장을 “엄마”라고 부르며 미안함을 전하는 편지를 보낸다. 부모의 이혼으로 삼촌과 “신발 신고 들어갈 정도로 엉망인 집”에 살며, 부산 서면 뒷골목에서 절도와 폭행을 일삼던 아이는 임 센터장의 뒷바라지로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피부관리 자격증을 땄다. 요즘은 부산교육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다음달 소년원에서 나와도 갈 곳 없는 수진이는, 예람센터에서 ‘엄마’와 지내기로 했다.


아이들한테서 나타난 변화는 확연히 떨어진 재범률로도 확인된다.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낸 자료를 보면, 청소년회복센터를 경험한 청소년들의 재범률은 18.5%로 일반 보호소년들의 재범률(37%)의 절반에 그쳤다. 부모 역할을 하는 센터장과 같이 생활하는 또래와 소통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덕이라는 분석이다. 회복센터에 있는 동안,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학교에 복귀하면서 안정을 찾는 경우도 많다.


1인당 교육비 40만원이 지원의 전부


청소년회복센터의 한계는 운영상의 제약이다. 청소년보호센터는 아동복지법상의 ‘그룹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법무부의 신병인수위탁보호위원 제도를 응용한 방식일 뿐이다. 법원이 소년범을 위탁하면서 주는 소년 1인당 매달 교육비 40만원이 지원의 전부이다보니, 센터장들이 사비를 털어 아이들과 지낼 공간과 생활비를 마련해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키고 있다. 그나마 법원 지원금은 5~6개월씩 밀리기 일쑤다. 겨울이 오니 난방비가 걱정이다. 어울림센터의 김선화 센터장은 “우리는 전기 패널로 난방을 해서 매달 80만~90만원이 전기료로 나간다”고 토로했다. 운영자들은 카드 돌려막기와 보험 약관대출 등 ‘급전’을 쓰기도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간이다. 위탁보호 기간이 법적으로 최대 1년으로 정해져 있어, 센터 퇴소 뒤 ‘지속적 관리’는 불가능하다. 천종호 판사와 센터장들은 청소년회복센터를 ‘비행청소년 전담 공동생활가정’이라는 명칭으로 아동복지법 또는 청소년복지법에 포함시키는 안을 요청하고 있다. 천 판사는 “비행청소년들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데, 대규모 시설에선 개별적으로 보살핌을 받기 어렵다. 일반 그룹홈에선 비행 ‘학습’의 우려 때문에 비행청소년을 꺼린다. 비행청소년 전담 그룹홈을 분리 운영하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회복센터가 제도에 편입되면 전기료·수도료 감면 등 복지시설로서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선영 연구위원은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보호 선진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아동복지시설의 종류로 규정되어 있는 공동생활가정 범위를 비행청소년 전담 공동생활가정(청소년회복센터)까지 포함해 규정하거나, 청소년회복센터만 따로 추가해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근 송호창 의원이 청소년회복센터를 아동복지시설에 편입시키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표가 되지 않는”(천종호 판사) 아이들의 목소리에 국회가 귀를 기울일지는 미지수다.


낳은 아이도 못 키우는 사회의 ‘싱글세’ 농담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민우(14·가명)는 8개월의 가출 기간 동안 절도·폭행·사기죄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혼자 계신 할머니를 위로하는 의젓한 아이가 되었다. ‘걸린 것만 70대’라는 전설의 오토바이 절도범 수현(18·가명)은 집 나간 엄마를 증오하며 오토바이를 집어탔지만, 이제는 어울림센터의 맏형이 되어 아이들 독서량을 검사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는데, 우리는 ‘내 아이’만 과잉보호하면서 다른 아이들은 더 억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낳은 아이도 제대로 못 키워내면서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 농담을 던지는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일까?


부산=글·사진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 후원 계좌 960101-01-362659 국민은행, 예금주: 사단법인 국제교육복지센터 보물상자

■ 참고 문헌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천종호 지음, 우리학교 펴냄),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베르나르 올리비에·다비드 르 브르통·다니엘 마르첼리 지음, 효형출판 펴냄), ‘재범방지를 위한 교정보호 선진화 방안 연구’(한국형사정책연구원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