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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가을, 제주

#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제주에서 맞이한 세 번째 추석. 지난해까지도 이곳에서 보내는 명절에는 어색함과 낯설음이 짙게 배어있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진 기분이다. 집집마다 차례 드리러 다니는 옛 풍습도, 어느 곳이 몇째집인지 하는 역사도 터득했고, 육지와 달리 꼬치에 꿴 적갈, 늙은 호박을 무친 나물과 카스테라나 빵을 올리는 차례상도 익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어른들끼리 사투리 써가며 나누는 대화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친가만 해도 예전보다 차례상차림이 많이 단순해졌다지만 여전히 음식 장만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번 추석에도 큰어머니는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닭찜, 여러 야채와 돼지고기를 잘 다져 섞은 동그랑땡, 두부전과 녹두전, 약과 등을 준비하셨을 테지. 조상님께 올릴 상을 한가득 차리는 마음은 같지만 제주도 차례상은 그보다 단순한 편이다. 생선은 찜대신 굽고, 닭은 올라가지 않으며 소고기를 넓적하게 여며 간장양념을 하는 식의 적이 아닌 꼬치에 꿴 적갈을 쓴다. 육지와 달리 돼지고기도 함께 사용한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경기도에서 쓰는 말린 통북어는 제주에서 보기 힘든 차례음식이다. 무와 쇠고기를 넣고 끓인 탕국 아닌 소고기 또는 생선미역국을 진설하는 점도 다르다. 결혼 후 맞이한 명절에는 음복 때 사촌들과 앞다퉈 달려들던 한과나 약과를 맛보긴 힘들어졌지만 옛날식 카스테라와 생도넛 비슷한 빵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한과 등은 꼭 올리는 음식이 아니라 있으면 진설하는 축). 


육지보다야 명절 음식 종류가 적고 빵이나 떡 등은 대개 사다 쓰기 때문에 어머님은 늘 "제주도는 간소한 편"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추석 당일이면(제주도는 아들끼리 제사를 나누는데, 우리집은 추석 차례 당번) 당신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나물무침과 생선구이, 미역국, 과일준비가 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손끝이 여물지 못한 며느리는 이 업무에서 제외대상^^;;이다보니 차례 음식 준비를 거드는 일은 전 부치는 것 정도다. 자연스레 명절 전날의 여유도 적지 않은 편이 됐다; 지난해 추석 때는 아예 며칠 넉넉하게 내려와 남편과 동네 한바퀴 자전거 나들이 + 동쪽 버스 투어를 강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이 빠듯하고 배불뚝이 신세가 된 올해는 그저 집안에만 있어야 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유일한 드라이버 도련님의 등장으로(ㅎㅎ) 콧바람을 쐬고 왔다! 매년 가을이면 '봉평메밀출제' 노래만 부르고 번번이 가지 못했는데 작은아버님네 메밀밭이 생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동네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산양곶자왈 근처라고. 본격적으로 전을 부치기 전, 든든히 점심을 챙겨먹은 우리는 메밀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말다툼의 여파만 아니었다면(-_-) 좀더 흠뻑 즐기고 왔을 것을. 사진으로 다시 보니 아쉽다. 메밀은 주로 강원도에서만 나는 줄 알았는데 제주도가 우리나라 최대 생산지라고 한다. 재배면적은 강원도의 약 1.8배, 생산량도 1.6배가량이라고. 이 제주 메밀은 시중에선 '봉평산'으로 통하는데, 제주에는 메밀 가공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도 차원에서 메밀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고.


# 이번 추석 득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친정에 제주 특산물 애플망고를 들고가기로 정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옥돔을 급하게 구하느라 애먹은 탓에 이번엔 출발 전 미리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마침 시부모님 지인 중에 농장을 운영하는 분이 있어 손쉽게 얻었는데 생각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가격!!


애플망고... 참 비싸더라... 예상치 두 배를 웃도는 값에 살짝 당황한 우리를 본 부모님은 그냥 두라고 하셨다;;; 


제주산 애플망고는 선물용으로 인기 높은 과일이다. 모양도 맛도 좋다, 정말로. 친정 선물과 별개로 어머님이 임신한 며느리 생각해 얻어오신 파치로 몇점 먹었는데 정말 전율이 ㅠㅠ 알고보니 요즘 워낙 애플망고를 찾는 사람이 많아서 파치도 호텔 등에 주스용으로 대느라 부족하단다. 그럼에도 어렵게 두 개나 얻어오신 어머님께 다시금 감사 ㅠㅠ 가족들에게도 인기 만점! '나 망고 안 먹어'라던 막내동생은 한 점 입에 넣자마자 "진짜 맛있네!"를 연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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