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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1월과 2월 사이에

​# 머리를 잘랐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짧게 자르고 펌까지 한 건 처음이다. 머리카락이 얇은 편인데다 트리트먼트 등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미용실에 몇 번 들락날락하면 꼭 머리카락 끝이 빗자루마냥 거칠어진다. 그때그때 잘라낸 줄 알았는데도 많이 상해서 광대뼈 근처 정도까지는 쳐내야 수습이 된다고 들었다. 딱히 머리 자르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 편이라 별 부담없이 "그럼 그냥 다 잘라주세요" 했다. 막상 자르고나니 어색하긴하더라. 사람들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문제는 짧은 머리의 경우 하루하루 관리하기야 편하지만 미용실에 자주 가야 한다는 것. 휴일에도 다른 일하느라 앞머리도 눈을 찌를 때즈음 자르러 가는 내가 과연... 그러고보면 중학교 때 한두달마다 미용실에 칼같이 갔던 일이 신기하기도 하네. 역시 뭐든 강압이 필요한 건가...;


# 미용실에 다녀온 지 며칠 안 돼 상을 받았다. '헌법 위의 이마트' 때도 그렇지만, 수상은 처음 그 소식을 전달받는 순간이 가장 강렬하다. 그 찰나가 지나버리면 시상식에 참석하든, 상금을 받든 별 감흥이 없다. 어찌 보면 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으니 나쁜 반응은 아니지 않나 싶다.

다만 이번은 첫 수상과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나는 세월호 참사 보도로 상을 받았다. 기자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불행을 보도하는 일이 밥벌이의 8할이라지만, 세월호라는 엄청난 비극이 그저그런 이벤트의 하나로 다뤄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우리의 기사 역시 '그래, 2014년 4월 16일에 여객선 한 척이 침몰했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라며 잠깐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 더해지는 한 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그러기 쉽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참사는 현재진행형인데 우리가 그 사건을 보도했다고 치하받는 일이 '세월호는 이제 지난 일이야'라는 또 다른 목소리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우리는 세월호의 침몰과, 시간과 싸워야 하는데, 내가 이 상을 받을 만큼 잘 싸워왔는지, 앞으로 잘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겁이 난다. 뿌듯함보다 무언가 막막하고 먹먹한 수상이었다. 그래도 그가 함께 해줘서, 응원해줘서 고마웠다.


뱀발) 손 사장님도 보고 ㅎㅎ 남편이 찍은 몰카; 난 막상 (멀리서나마) 실제로 보니 '대학 때 강의 듣던 시절보다 확실히 늙으셨네'란 생각만;


# "딱히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은 없지만... 우리 요즘 들어 참 좋은 것 같지 않아?"

오늘 아침에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데 그가 말했다.

"글쎄, 그런가? 난 딱히 모르겠는데 좋긴 한듯." 대답은 이렇게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의 말이 맞는 듯하다. 요즘 몸의 피로도가 높아져 마음은 챙길 틈조차 없었다. 늘 밤늦게 귀가하긴 했지만, 최근 몇 주간은 매일 야근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커져서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가 여러 번 밥상을 차려줬다. 할 줄 아는 음식이라야 계란밥, 김치찌개정도인 남자가 (본인 스스로 '이건 요리는 아니야'라고 했지만) 스테이크까지 구워줬다. 비록 마늘은 다 타버렸지만...(먼산)


7년을 꽉 채운 다음에 정식 부부가 됐으니 연애시절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았다.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은 만큼 일상이 새롭거나 화낼 상황도 딱히 없었다. 다만 미묘한 변화는 느껴진다.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 더 세심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혼'이라는 약속이 주는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을 묶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구속 같다. 그와 나는 점점 더 서로를 알고, 더 좋아하게 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 동네 맛집이라는 '영도분식'에 다녀왔다. 김밥 한 줄과 함께 나오는 잡채떡볶이(1인분 3500원)은 초등학교 방과 후 사먹던 떡볶이의 맛이었다. 매콤한 맛보다는 단맛이 강한 국물떡볶이말이다. 그때 교문 바로 옆에 붙어있던 떡볶이집 할머니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부모님 집이 모교 근처라 평택에 갈 때마다 자연스레 지나치는데, 요즘 초등학교 근처에는 아이들이 주전부리할 곳이 참 드물더라. 우리 동네를 봐도 그렇고. 아이들은 오백원, 천원 주고 떡볶이 사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것일까. 의외로 반응이 좋아 놀랐던 '학원국' 동시 소개 기사가 떠오른다(http://omn.kr/bnri).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시장 천장을 올려다봤다. 영도시장은 철거직전에 놓인 곳이다. 속옷가게, 슈퍼, 야채가게 어느 곳 하나 조용하다. 처연하게도, 쇠락하는 공간 특유의 스산함이 느껴졌다. 천장도 철골 사이에 검은 그물을 쳐놓은 수준이다. 조만간 이곳에는 대형마트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그런 곳에서도 고개를 돌리면 하늘이 보였다. 겨울하늘 특유의 쨍한 파랑이 느껴지는. 누군가는 저 틈새로 보이는 하늘 덕분에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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