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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몇 가지/휩쓸리기보다는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597311.html


2009년 3월26일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에게 질문하고 있는 헬렌 토머스. ⓒ AP 뉴시스



첫줄 중앙에서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


토머스는 각종 기록의 보유자다. 1943년 <워싱턴 데일리 뉴스>에서 복사하고 커피 타주는 사환으로 언론사에 발을 내디딘 그는 남성 중심의 언론계에서 금녀의 문을 열어젖힌 개척자였다. 기자들 모임인 ‘내셔널 프레스 클럽’의 첫 여성 간부, 백악관을 출입한 첫 통신사 여기자, 백악관 첫 여성 지국장,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첫 여성 회장 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 특히 그는 1960년부터 2010년까지 50년간 백악관을 출입하며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또 약 30년간 브리핑실 첫째 줄 중앙에 앉아,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말로 브리핑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그에게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이라는 별칭이 붙는 이유다. ‘생큐,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없어졌다. 30분으로 제한된 대통령 기자회견 시간이, 추가 질문이 있거나 대통령이 하고자 할 때까지 늘어나며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기록만으로 그의 대한 이례적인 관심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질문으로 역대 대통령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겐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겐 이란 인질 사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겐 그레나다 침공과 이란-콘트라 사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겐 모니카 르윈스킨 사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겐 이라크전 등이 그의 단골 질문 주제였다. 그의 공격 대상은 보수·진보 대통령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그가 출입할 당시 <유피아이>와 <에이피> 두 통신사가 번갈아 가며 첫 질문권을 행사해 그 영향력은 더 컸다. <워싱턴 포스트>는 “브리핑룸 첫째 줄에서 나온 그의 날카로운 질문은 10명의 대통령을 괴롭혔고 연방 관리들이 비밀을 지키려는 정보들을 들춰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평했다. 또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이 음모계획서를 봤던 당시 법무장관의 아내와 밤마다 전화통화를 하며 단독기사를 쓰는 등 많은 특종을 발굴한 기자이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그의 전형적인 질문 방식 하나.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3년 토머스가 동료 기자에게 “내가 겪은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평한 것을 알고 3년 동안 그를 기자회견장에 초청하지 않았는데, 출입 금지가 풀린 첫날 토머스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의 이라크 침공 결정은 수천명의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죽음을 초래했고 미국인과 이라크인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입혔다. 최소한 공개적으로 주어진 모든 이유는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왜 전쟁을 원했는가? 당신은 석유는 아니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또는 다른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질문 뒤에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자르며 옥신각신했다. 부시 대통령은 “나는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권력에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토머스는 권력자에겐 매몰찼다. 1974년 토머스가 <유피아이>의 백악관 지국장으로 승진했을 때 닉슨 대통령은 “이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여성이 이 자리에 발탁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토머스를 치켜세우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 질문권을 가진 토머스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이 워터게이트 피고인들의 입막음을 하려고 돈을 줬다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백악관 최고위 보좌관이 위증죄로 기소됐다….” 토머스는 나중에 이 일화를 얘기하며 기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당신이 사랑받고 싶다면, 이 직업에 뛰어들지 마라.’


…(중략)… 토머스가 시종일관 비판정신을 잃지 않은 것은 그의 투철한 기자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기자의 질문권을 일종의 ‘특권’으로 여겼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밀스러운 것을 털어놓으라고 질문하지 않는데 기자만이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자가 수행해야 할 ‘책임’이라고 봤다. 그는 1996년 <모던 머튜리티>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기자들)는 이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질문을 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의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토머스는 기자회견이라는 이벤트를 매우 중시했다. 1999년 8명의 대통령을 겪고 나서 쓴 저서인 <백악관의 첫째 줄>(Front row at the White House)에서 그는 “미디어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며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것의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말했다.


토머스는 기자회견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만 해도 기자들이 대통령한테 비공식적으로 접근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변인을 통하면 답을 얻을 수 있었으며, 대통령이 자신의 리무진에 태워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또 정기적으로 백악관 뜰에서 기자들과 산책을 했다고 한다. 언론 매체들이 많아지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자 이런 기회들이 차츰 사라졌고, 기자회견이 유일하게 대통령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기자회견이 대통령에게 현안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고 일반 시민이 생각하는 것을 대통령이 알게 하는 거의 유일한 행사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우리는 질문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들이 알게 하고, 다른 한편으론 국민들의 생각을 대통령이 알게 한다”고 말했다.


…(중략)… 토머스는 기자회견장을 일종의 법정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은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대한 유일한 감시자”라며 “기자회견은 법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이란-콘트라, 모니카 르윈스키 등 대통령이 감추려 한 대형 부정부패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기자회견장은 한 명의 증인이 약 60명의 검사들(기자들)로부터 질문 공세를 받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기자회견은 대통령에게는 삼켜야 하는 쓴 약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역대 미국 대통령과 보좌진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브리핑실에 좌석표를 만들어 어느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질문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결정했다. 또 예상 질문지를 만들어 예행연습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만반의 준비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토머스는 “바로 이때가 대통령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토머스는 대통령들만 비판한 게 아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대변인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아 사태가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또 뉴스 전문 유선방송들이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을 실시간으로 방송하자 기자들이 카메라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점도 꼬집었다.


토머스는 기자들은 권력자에게는 무례해도 용서가 된다고 자주 말했다. 그는 <백악관의 첫째 줄>에서 “내가 첫 질문을 하고자 일어설 때면 몸으로 이런 것을 느꼈다. 카터 대통령은 ‘움찔’, 레이건 대통령은 ‘웅크리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오 노!’라고 말하는 걸”이라고 썼는데, 과장이 섞인 말이지만 그가 어떻게 대통령들에게 질문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토머스와 함께 일할 기회를 가졌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캐런 터멀티 기자는 “거친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토머스의 말을 상기시키며, 기자들은 평화를 깨뜨리려고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고 썼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도 “토머스는 권력자 앞에서 소심한 기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평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