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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조금 늦은 후회 but


# 작년 가을~겨울만에도 의기충천했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신발끈을 동여매고 뛸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책상 앞이다.

현재 내가 가장 답답한 건 이 대목이다. 늘, 아직도 '책상 앞'이라는 것. 소속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생산해내고, 남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안다. 문제는 그걸 잘 알면서도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0일, 자투리 시간을 쪼개 허겁지겁 용산참사 현장에 다녀올 때만해도 '몸을 움직이자'는 다짐은 실현되어가는 듯 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낸 지 두달 째다. 결국 현재 내가 느끼는 무기력감+불안함+초조함 등등 복잡미묘하고 그닥 반갑지 않은 감정들의 종합세트는, 여지껏 그래왔듯, 머리로 생각한만큼 움직이지 않은 이유가 큰 것 같다.

새삼 자소서에 썼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기자라는 직업은 무엇인가? 그 본질적인 답을 나는 너무 피상적이고 근본적이며 상투적으로만 결론지었던 게 아닐까? 지나치게 원론적인 '저널리스트'의 역할론에 갇혀 있던 건 아닐까? '소속'이 가져다 줄 편리함과 안정감만을 꿈꾸고 있던 게 아닐까?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반성보다는 '자만' 아니 '오만감'으로 된 가시를 뾰족이 세우고 있던 게 아닐까? "재수없다"는 그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욱신거린다. 마음이 아픈만큼 후회도 밀려온다.

# 돌이켜보면, 얻은 게 적지 않았던 1년이었다. 나는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느껴던 답답함과 피로감 혹은 짜증들이 시야를 흐리고, 감각을 마비시켰던 걸까. 그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공식적으로야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심 바라던 몇가지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채워지지 않았고, 과정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겉으로는 성실했다. 그런 '척'은 익숙하니까. 하지만 과연 100%를 했는지, 100%인척 했는지....의문스럽다. 왜 나는 지난 한 해를 정리해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을까. 과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닻이라고 캐리가 말했지만, 때론 배도 멈춰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결국 나의 문제는 '겸손한 척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나와 다른 사람,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와 저사람 대단해'란 말은 쉽게 하면서도 인정하고, 배우려고 들지 않는다. 물론 '질투'가 그동안의 삶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앞으로 그럴테지만-다는 까닭이 크다. 그러나 질투와는 별개로 '존심을 세우는 일'은 '현재의 내'게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지난 몇달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고 끝끝내 존심을 잃지 않고 싶었던 나의 몸부림이, 스스로를 괴롭혔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