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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어려워 어려워



너무 빤한 '나로호의 스토리텔링'

 우주기술이 우리 언론에서 주요한 보도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지난해 4월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 오르는 사건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우주비행에 관한 언론 보도는 외신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우주공간에 날아오른다니 얼마나 감격적인 소식이었을까. 이소연씨의 우주비행은 러시아의 우주선 덕분에 이뤄진 것이고, 이런 우주인 탑승은 거액의 탑승료를 지불하면 어렵지 않다는 현실보다도 무중력 공간에서 떠다니는 신기하고도 감격적인 장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당시 기사들을 기억으로 돌이켜보면, 한국 첫 우주인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 우주 공간으로 진출했다는 민족적 환희가 한 축이었다면 우주선 제공국인 러시아와 탑승국인 한국의 엄청난 우주기술 격차로 인해 일어나는 현실의 여러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분노가 다른 한 축이었다. 지구 귀환 과정에서 생긴 이소연씨의 신체 이상에 대해 러시아의 태도가 오만하다느니, 우리 정부가 너무 저자세로 러시아를 대하고 있다느니 하는 분노는 환희 이후에 찾아온 '기술 없는 우리 민족 자신에 대한 노여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우주인이 고산에서 이소연으로 교체될 때에도 러시아에 대한 정부의 저자세를 바라보는 노여움이 뭍어났다. (* 지난해 4월 비슷한 글을 이 블로그에 쓴 적 있다. 이 블로그에서 전체보기를 선택할 때 나타나는 "왜 우주인을 쏘아올리지?"[34], "우주인 탄생 감상법은?"[35], "우주인사업 익명의 비평/비판자들"[36], "온탕냉탕 우주인사업 보도"[39] 글들)
 
 이처럼 우주비행에 관한 우리들의 서사(narrative) 또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환희와 분노라는 매우 다른 줄거리를 지니며 이뤄지지만, 사실 그 뿌리는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민족주의, 또는 민족 자존심....
 
 이번 나로호 발사에서도 같은 서사 또는 스토리텔링이 나타날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역시 민족주의, 또는 민족 자존심. 우주시대를 열며 우주발사 자립국을 뜻하는 속칭 '스페이스 클럽'에 대한민국이 들게 됐다는 (국내외 항공우주 전문가나 주요기술 제공국인 러시아가 보기에) 과장된 자화자찬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기술격차로 야기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1단 엔진이 러시아에서 연소시험을 한 것과 한국에 실제로 제공된 것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이 과감하게 제기된 데에서도 이런 분노를 볼 수 있는데, 어찌보면 그것도 역시 '기술 없이 끌려다니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분노'가 함께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아직 유보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의혹 제기가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만큼 중요한 부분이 아니며 설사 의혹이 사실이라 해도 실익이 별로 없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해선 앞글의 취재메모에서 정리되지 않은 횡설수설로서 언급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주기술에 대한 우리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빤하다는 것이고, 우주기술이 민족주의나 민족 감정에 기대어 공중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저번 한국 첫 우주인 취재에 이어 한국 첫 우주발사체 취재를 하면서 자꾸 드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런 서사와 스토리텔링의 그물망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다. 나로호에 관해 할 얘기가 우리사회에서는 너무도 적은 것일까? 우주기술 개발에는 민족적 자부심을 넘어서는 다른 국민 공감대의 주제는 없는걸까? 왜 우리는 우주기술 개발에 나서야 하는지 그 로드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내는 과학기술자나 인문사회학자는 왜 없을까? 시민사회단체는 발언권이 없는걸까? 다른 차원과 주제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안가라 개발 로드맵과도 겹쳐 있는 나로호 발사의 국제적 의미는 또 어떨까? 불리한 계약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국내 연구자들의 진솔한 고민과 희망은 무엇일까? 거대하고 복잡한 개발사업의 복잡다단성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서 왜 하나 또는 일부 측면에 하일라이트를 맞춰 좋은 것, 나쁜 것이라는 단순 평가를 내려야 할까, 공중의 서사와 스토리텔링에서 섬세하고도 복잡한 평가는 불가능한 것일까? 나로호 개발의 파트너인 러시아는 이번 발사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까, 또한 러시아인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나로호 발사는 어떤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까? 왜 북한 위성발사체에 대해선 군사 담론이 무성했고 우리 위성발사체에 관해서는 민족 기술독립 담론만 있을까?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땅에서 벌어질 첫 우주발사체 발사를 어떤 사건으로 평가할까? 나로호 발사 이후에 국내의 우주개발의 연구 지형은 어떻게 재편될까? ..... 

  많은 궁금증이 있지만 들을 수 있는 얘기도 적고, 말하려 하는 이들도 적다. 나로호 발사는 이런저런 다양한 의미와 측면을 지니고 있겠지만, 한국에서 나로호 발사는 민족적 환희와 민족적 분노를 되풀이하는 단일한 성격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뿐인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서사와 스토리텔링의 그물망 안에 갇혀 있다... 며칠 뒤 나와 우리는 다시 그 민족적 서사와 스토리텔링을 반복하고 있는 나와 우리 모습을 새삼 발견할 것이다... 

/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http://blog.hani.co.kr/wateroo)


과학보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눈여겨볼 기사. 솔직히 말하면 '과학과 사회의 소통' 어쩌구를 자소서의 단골 멘트로 쓰지만, 막상 나도 그렇게 과학면을 챙겨보지 않는다.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대형 이슈'가 있거나 아님 그나마 아직 관심의 대상인 생명과학 관련 부문의 뉴스가 아닌 이상 말이다. 앞으로 이런 기사를 쓰고 싶다는 나조차 이런데, 일반 대중이 과학 뉴스에 관심이 뜸한 건 어느 정도 이해가는, 그래서 조금은 슬픈 현실이다.

여튼 '읽히기 위한' 또는 '보여주기 위한' 뉴스의 속성 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흔히 선택하는 서사와 스토리텔링이 '민족' 그리고 '경제'인 것 같다. 황우석이 그만큼의 영향력과 지위를 얻었던 것도 '미국의 중심부(맞나?;)'에 '태극기'를 꽂고 온 자랑스러운 '한국인'인데다 '경제적 이득이 가히 천문학적인' 원천기술을 연구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민족과 애국의 상징인 사람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으니, 당시 PD수첩 편이 아니었던 언론들이 '분노'라는 서사를 택한 것을 이런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에는 황-정-언 이라는 삼각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많았던데, 뉴스의 주목도를 위해 '섹시한' 제목과 내용은 필수였을 테니까.

가르치려 들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저널리즘이 다루는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특히나 과학처럼 '전문가주의'의 베일에 쌓여있는 분야는 더욱 그렇다.  이 연구가 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인지, 나랑은 무슨 상관 있는 건지를 제한된 분량으로 쉽게 풀어나간다는 게 기자 개인의 글쓰기 능력도 있지만 노련함 역시 필요한 부분인 듯. 게다가 과학보도는 단순히 기자 개인 차원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시스템'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 나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물론 난 과학'전문'기자라기 보다는 과학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부 기자' 정도의 포지션을 지향하고 있지만. 여튼 그렇게 될 깜냥이 될 때까지, 되고나서도 엄청나게 고민해 볼 일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