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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을.


"저도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 좋아요. 물론 비판이 신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비판할 점이 있다면,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꼬집으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충격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망이 감지되지 않으면 무력감이 느껴져요.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소망이 없는 비판은 존재 이유가 없는 듯 하고요. 바라는 상태가 없는데 무슨 괴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 마치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 사람 조차도 소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비판하는 능력도 안 뛰어난 저는 더욱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세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독자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망을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가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

출처는 요기

예전에 오빠가 "넌 나랑 얘기하면서도 꼭 그렇게 기자처럼 말해야겠어"라고 (약간의 화를 내며;) 말한 적이 있다. '기자처럼 말한다'는 건 사실 일종의 '꼬투리 잡기'와 '캐묻기'를 한다는 건데, 그걸 아주 좋게 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상대방의 말에서 '비판할 구석'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의 글처럼 '꼬집기만 하는 비판'은 충격과 통쾌감을 줄 수 있어도 '희망'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결국 '희망과 변화'인데 어쩌면 나는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중요한 걸 잊고 있었는지도.